눈 이라....

눈과 관련된 일화들을 생각해보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 함박눈이 쌓인 동네 뒷산에서 비료포대에다가 짚단을 넣고 눈썰매를 타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산에 땔감나무를 하러 가시던 어른들이 길이 미끄러워진다고 야단치면서 말리기도 하시고, 경로를 이탈해서 가시덤불 속에 처박혀 따갑고 아파도 눈썰매가 주는 즐거움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옷이 다 젖도록 참 열심히도 탔습니다.

눈이 한 참 많이 내릴 때에는 동네에 들어오는 버스가 끊겨 면소재지까지 찬바람이 씽씽 부는 겨울 길을 한참이나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야 하기도 했고, 눈이 많이 쌓이면 눈 무게 때문에 딸기며 수박이며 심어놓은 비닐하우스가 무너진다고 학교에서 공부하다가도 부랴부랴 눈을 치우러 가는 친구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눈이 많이 왔던 것 같은데 눈이 녹아 얼어붙은 길에서 미끄러지고 눈을 치우러 이리저리 쫓아다녀도 눈이 오면 괜스레 설레고 또 눈이 쌓인 산과 동네 풍경이 소담스러운면서도 아름다워보였습니다. 마치 달력에 나오는 사진들처럼...

그런데 이게 군 입대를 하고 보니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이 눈에 대해서 왜 학(?)을 떼는지 이유를 알 것 같데요. 눈이 오면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눈이 계속 내리고 있어도 모두 눈을 치워야 됩니다. 축구장 만 한 연병장과 부대 내의 도로 등 거의 부대 울타리 내에 사람이 다니는 곳은 모두 다 치워야 됩니다. 눈을 어느 정도 치웠다고 한 숨 돌리고 있으면 어느 샌가 또 눈이 쌓여 있습니다. 나가서 또 눈 치웁니다. 눈이 또 옵니다. 또 치웁니다. 눈이 계속 옵니다. 그럼 계속 치웁니다. 때로는 밤에도 눈 치웁니다. 밤에 제설작업을 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냐라면서 툴툴거리고 있으면 ‘밤에는 전쟁 안 일어나냐?’라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할 말 없습니다. 입 꾹 닫고 눈 치웁니다. 겨울이면 몇 번씩이나 되풀이되는 일이라 눈이 좋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청순하고 순수했던 첫 사랑 소녀가 ‘미져리’에 나오는 스토커가 되어서 재회한 기분이랄까 뭐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끔찍(?)합니다.

전역을 하고 난 이후에는 눈하고 엮일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 형님이랑 차를 타고 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져서 도로 밑에 있는 논에 처박혔던 기억도 나네요. 차를 타고 가면서 길 주위로 뒤 집혀져 있는 차들이 있길래 혼자 웃었더랬는데 직접 당하고보니 눈이 많이 쌓인 도로를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눈에 미끄러지기 시작하니까 차가 통제가 안됩니다. 어?....어!...하다가 쿵. 

이제는 눈이 많이 내리면 교통체증, 교통사고 뭐 이런 말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 그리고 눈이 녹은 다음 날 검은 색인 오래 된 내 차에 남아있는 눈의 흔적은....으~~~윽....

억수로빠른 거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