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삶에 대한 회상

- 명상일기⑭ -

2021.6.3(목), 저녁부터 바람과 한께 제법 세찬 비

1.

연보라색 나뭇잎들이 어둠과 함께 내려앉으면서 6월초에 내리는 비와 함께 늦가을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로등 위를 바람이 스치면서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것은 무언가 에 쫓기는 듯한 일상을 사는 화자의 마음이 그만큼 불안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은 푸르름의 초입에 들어섰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계절의 끝자락을 연상하고 있으니......

2.

생(生)의 미련과 소음에 가득 찬 인간의 하루가 저물어 정적 속 도시 속에서 어김 없이 반투명의 어둠이 덮일 때, 종일토록 지친 나의 인생도 하루의 안식을 위해 내 머리와 심장을 철제 침대위에- 초점을 잃어버린 채 누워있는 병원의 식물 인간처럼 -사지를 쭉 벌리고 호흡을 멈춘 채 그렇게 누워 버린다.

하여 종일토록 지친 모두가 잠든 이 시각에 그때서야 비로소 내 의식이 살아움직이며 불면의 고뇌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한밤의 공허, 파고드는 심장의 약동이 온갖 회상을 되살려 불 태워진다.

수없이 찍혀진 디지털 카메라의 담긴 영상의 필름처럼, 늦가을 비오는 밤의 네온 싸인 불빛의 물결치는 환상처럼, 마음의 수없는 아픔들이 그 상흔을 메우는 고통과 함께 치밀어 온다.

그리고 찢겨지고 어긋난 삶에 대한 회상을 어느 흑백영화의 필름 영상처럼 말없이 펼쳐 내린다.

혐오한 내 인생(人生)을 읽으면서 난, 전율하고 또 저주 한다 / 통렬한 아픔에 신음하면서 / 쓰라린 눈물을 흘린다 / 어차피 단 한 줄의 슬픔도 / 씻어내지 못하면서......¹⁾

2

한때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던 우리의 사랑이 고뇌와 긴장,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상념의 긴 시간 속에서 결국 용해되어 버리는 '그 순간' 을 우리는 숙명적으로 맞이할 때가 있다.

.......프란츠는 슬퍼했다. 그는 사랑의 삶과 여행의 연결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 <팔레모로 여행가요!>라고 한 그의 요구에는 에로틱한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겐 제네바가 더 좋아요!>라고 한 대답은 그의 애인이 자기를 더 이상 욕구하지 않음을 의미 할 수 있을 뿐이다......²⁾

그리하여 이제는 먼 거리에 서서 아물 아물 바람에 스치우는, 그래서 이제는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먼 창공에 뜬 별과 같은 것이 되고 마는...... 슬픈 여정으로 우리의 여행을 끝내게 된다.

끝이 난다는 것은 / 홀가분한 휴식 / 아니면 고요한 기도와 같은 것 / ......³⁾

3

하지만 살아 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삶 또한 외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참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은 최악의 것을 받아들이는 심경에서 생기기 때문이다.⁴⁾

푸른 불 시그널이 꿈처럼 어리는 / 거기 조그마한 역 / 빈 대합실에는 /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 이따금 급행열차가 /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 지나간다 / 눈이 오고 / 비가 오고 / 아득한 선로위에 / 없는 듯 있는 듯 /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⁵⁾

1) 푸시킨 / 예언자

2) 밀란쿤데라 /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3) 정한모 / 기도

4) 임어당 / 생활의 발견

5) 한성기 /  <역>에서

#사진/pixabay /필자 -<결혼전에물어야할186가지질문>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