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났을 때

누나는 중학생이었다.

엄마는 보부상처럼 산골로 다니며 쌀과 보리를 받고 옷감, 천을 팔고다니셨다.

갓난아기를 두고 밤늦게야 들어오셔서 불어터진 젖을 먹이셨다.

누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배고픈 막내를 위해 가마솥 밥솥에서 

포르르 끓어오르는 밥물을 떠서 사카린을 태워 먹였단다.

이제 세월이 흘러 누나가 정년퇴직을 했다.

매일 내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매형도 같은 날 정년퇴직을 하셔서 집에서 홀로 식사를 하시고,

누나는 내 점심식사를 도시락 사 오신다.

누나의 몸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많이 망가져있다.

그래서 사무실 옆 강변 산책로를 매일 만보 이상 걷는다.

당뇨가 심해서 청소노동자로 일하실 때도,

열심히 쓸고 닦고 일하는 게 사는 길이다고 하셨고,

지금도 매일 만보 이상 걷지 않으면 온몸이 굳어온다.

췌장도 신장도, 부인과 쪽도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의사가 손을 댈 수 없는 부위에 혈관에 꽈리가 생겨,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산다.

두 아들이 모두 아들 딸을 또 낳고 사는데,

명절마다 집에서 며느리는 밥도 설겆이도 안 시킨다.

누나가 직접 새벽부터 밥하고

자고 있는 며느리들 깨워서 밥 먹이고,

과일이나 깎아라고 하고는 설겆이도 직접 하신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시니

항상 솔선해서 먼저 행동하신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으니,

우리 형제들 중에 누나가 가장 나이가 많다.

막내인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엄마같은 누나의 정을 마시며 산다. 

sd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