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하면 치킨, 피자였었는데.....

딸 셋 덕분에 그래도 뭔가 먹을 거리가 생기는 것 같다.

나이 들어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던 것들, 먹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던 것들이

생각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돌솥에 눌려 만든 누룽지 숭늉이 마음에 들고,

고구마 한 조각 먹으면 족하다.

먹고 살기가 빠듯하던 어린 시절에 그리도 먹고 싶어했던 바나나도 맛이 없다.

쌀이 주식이 아니었던 때,

집 안방을 차지한 겨울 뒤주 속

짚으로 둘러싼 뒤주 안에 흙 묻은 채 저장되던 고구마.

아빠(아버지 살아 생 전, 딱 한 번 아빠라 불러본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 못 알아들으시고, 뭐라고? 하셨던.)가 쇠죽 끓인 재 안에 익혀주시는 군고구마를 시커먼 입이 되도록 허겁지겁 먹었던 겨울이 있었다.

불이 없이 배가 고프면 입으로 흙 묻은 고구마 껍질을 뱉어내고 고구마즙이 하얗게 돋아나는 속살을 배어 먹었다. 가끔 배알이를 하지만, 고픈 배를 참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렇게 맛있던 치킨, 피자, 족발, 보쌈, 삼겹살도 맛이 없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배가 불러올 뿐이다.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은 겨울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유투브 레시피를 따라 샌드위치도 만들어 본다.

5성급 호텔 주방장님의 레시피대로 만드려면 재료를 몇 군데 들러 구입해야 한다.

그런데 맛이 없다.

"라면 먹고 갈래?"

밤마다 아내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조른다.

라면이 맛있다기 보다, 이 나이에 아내가 날 사랑하는 지 시험해 보고파서다.

황후는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셔서 라면은 절대로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한다.

난 황후께서 공주들과 나 몰래 라면을 잘 끓여 드신다는 걸 안다.

콜라도 사랑을 증명해 준다.

냉장고 가까이만 가도

황후께서 말씀하신다.

"콜라는 안 되요!"

투덜거리며 돌아서지만, 끔찍이도 사랑해 주시는 황후를 흘겨 보며 내 방으로 간다.

냉장고 안에는 며칠 전에 먹다 남긴 케잌, 베라, 치킨, 피자조각들이 위생팩에 얼어붙어있다.

아빠 엄마 몰래 흙 묻은 생고구마를 짚뒤주 사이로 빼내 먹던 그 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