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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여자 넷은 너무 많아 <2화>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이벼리

2. 김정숙과 김경숙

우리 가족은 세 식구다. 64년생 김정숙 씨와 66년생 김경숙 씨. 그리고 나 93년생 이민주. 김정숙 씨는 김경숙 씨의 언니고 난 김경숙 씨의 딸이다. 엄마는 아빠와 아주 오래전에 이혼했다.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고, 물 뿌리는 등의 소모적인 일은 없었고 그냥 ‘성격 차이’로 합의하에 이혼했다고 했다.

나도 아빠를 원망한다든지, 엄마를 미워한다든지, 십수 년째 못 봐 그리움을 안고 있다든지 하진 않는다. 아빠는 가끔 만나고 있고 엄마도 그걸 안다. 아빠와는 그냥 적당히 얼굴 잊어버릴 때쯤 만나서 쓸데없는 잔소리를 듣고는 속으로 다신 안 봐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다 다시 생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만나는 정도의 사이다.

엄마와 이모는 어릴 적부터 붙어 다녔다고 했다. 자매라면 당연한 걸 수도 있겠지만 그 둘은 워낙 달라서 더욱 튀었던 것 같다. 이모는 장녀였고 엄마는 둘째, 삼촌은 셋째였다. 그 시절 사람들이 다 그랬듯 셋째 삼촌이 제일 우선이었고 형편까지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이모는 상고로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회사에 취업했다.

이를 남존여비라는 유물의 폐단이라고 비난하기도 애매한 게 이모는 공부에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꽤나 예뻤기 때문에 적당히 취업해서 적당한 남자와 적당히 결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모는 꽤 예쁘장해서 문제였다. 코나 입이나 모난 곳이 없었고 본인도 그것을 매우 잘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꾸미는 데 능했다.

어릴 때 이모 방에서 이모랑 논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팔을 들춘 채 열심히 겨드랑이 털을 뽑던 모습, 한시도 손을 쉬지 않고 피부 마사지를 하던 모습, 새로 산 옷이라며 하얀색 투피스를 갖춰 입고 야밤에 구루푸를 말던 모습 등이 전부니 말이다.

이에 더해 고등학교 졸업 전에 급하게 한 쌍꺼풀 수술은 그녀의 얼굴에 결정적 한 방을 제공했다. 생각보다 두껍게 자리 잡은 쌍꺼풀은 이모의 얼굴에 묘한 색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모는 항상 풍문을 몰고 다녔다. 쟤가 쟤랑 잤다더라. 유부남이랑 여행을 갔다더라. 한 부서의 남자 전부가 쟤를 두고 다퉜다더라. 회사 사장이 쟤한테 집을 사줬다더라 등 소문은 소문을 낳고 더 재밌는 방향으로 부풀려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러 사랑을 전전하며 이모가 얻은 것이라곤 어언 25년 전,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더 어린 여자와 만난 남자가 사줬던 조그만 컬러TV가 전부였다. 이모는 50대를 넘긴 지 오래지만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남자친구 이야기를 나한테 꺼내 놓는다.

   

반면 엄마는 세상 진지한 인간이다. 어딘가 모르게 중성적인 엄마는 어릴 적부터 외모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했던 단발머리를 아직까지 유지한다는 전설이 있다. 엄마는 우울한 사춘기를 보내며 수많은 문학작품을 탐독했다. 머리가 좋아 공부도 잘했다. 무뚝뚝하고 말도 많지 않은 둘째 딸을 너무도 사랑했던 이상한 취향의 할아버지는 엄마를 꼭 이대에 보내고 싶어 했다.

공부 잘하니 대학을 보내곤 싶었는데 여자 수준에 맞는 대학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당연히 할머니는 서울대를 갈 실력이라며 말렸다. 엄마도 서울대를 가고 싶어 했지만 촌지를 걷는 담임선생님에게 저항하는 방식을 잘못 택했다. 수학을 가르치던 담임 시간에 매번 자는 것으로 소극적이지만 뒷심 있게 복수를 했다가 수학 성적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이대에 진학한 엄마는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가 정학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아빠와 만나 결혼해 나를 낳았다. 결혼 후 약 사 년 간 진보 마초를 페미니스트로 바꾸는 실험을 시도했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 둘은 이혼했다. 지금 엄마는 글을 쓰며 산다.

소설을 쓴다고는 하는데 사실 난 엄마가 무슨 글을 쓰는 지도 잘 모르겠다. 그 글이 빛을 볼까 싶긴 하면서도 저작권료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갖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현재로써는 이모가 벌어오는 월급이 생활비의 거의 전부니 아직 기대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둘의 관계는 꽤 합리적이다. 보통은 이모가 발언의 주도권을 잡으며 엄마는 그에 맞춰 따라가는 편이지만 엄마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이모도 그런 상황이 오면 거의 다 맞춰주는 편이다. 무엇보다 엄마가 한 번 마음을 먹는 일은 많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삼사 년에 한 번 정도일 것이다.

가장 최근 마음먹은 일은 영화광인 엄마가 큰맘 먹고 60인치짜리 TV를 사 왔던 일이었다. 이모는 없는 형편에 60인치가 말이 되냐며 화를 냈지만 엄마는 몇 마디 설명을 마치고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은 이모가 백기를 들었고 사실상 엄마와 맞먹을 정도로 영화광인 그녀가 가장 만족하고 있다.

대부분의 갈등은 보통 이모가 가져왔다.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든, 헤어졌든 엄마와 나는 들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마저도 익숙해져 엄마와 나는 상부상조하고 있었다. 너무 지겨울 땐 엄마가 나한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휴식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 정도로 우리 세 식구는 서로에게 익숙한 상황이었다. 서로의 경계를 잘 알고 그것을 침범하지 않으려 했다. 게다가 나름 세 식구 중 사고뭉치인 이모는 나이 어린 연하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진 상태였으니 나름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3. 발단, 전개 없는 위기

이사 온 뒤 몇 주가 흘렀지만, 그 언덕에는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계단까지는 괜찮았는데 계단이 끝난 뒤에 언덕을 살짝 한 번 더 올라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고난 끝 행복 시작이어야 하는데 고난하고 고난 살짝 한 번 더 같은 기분이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질 만큼 더운 날이었다.

비가 올 듯 말 듯 축축했기 때문에 언덕길의 풍경이 한층 더 구질구질해 보였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마저 나와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기 때문에 마음은 더욱 심란했다. 마음 같아서는 담배라도 한 대 태우며 고독을 씹어야 했지만 현실은 언덕을 오르느라 헉헉대기 바빴다.

숨을 몰아쉬며 집안에 들어섰다. 에어컨이 없어 늘 선풍기를 켜두고 온 방의 문을 열어두는 집인데 문 하나가 닫혀 있었다. 방 세 개 중 가장 작은 방이자, 음침한 방이자, 엄마가 서재로 사용하는 방의 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이상했다.

분명 후텁지근한데도 어디서인가 느껴지는 서늘함과 긴장감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듯했다. 난 노크를 하고 방에 들어갔다. 엄마는 구닥다리 데스크톱 앞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매일 같이 입는 커다란 회색 티 차림이었는데 더웠는지 겨드랑이와 등 부분이 젖어있었다.

“엄마 뭐해?”
“….”
“아니, 엄마 더운데 선풍기도 안 켜고 왜 그러고 있어?”
“….”
“왜 그래. 말도 없이”
“민주야. 이모가….”
“응?”
“….”
“왜 그러는데. 말을 해야 알지. 사람 불안하게 하지 말고 말해봐.”
“이모가 임신을 했대.”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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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작가 이벼리 -

   

초여름에 태어났다. 누군가에게 읽힐만한, 누군가 읽고 싶어할만한 글을 쓰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밥 벌어먹고 사는 것이 목표다.

경제미디어의 새로운 패러다임, 파이낸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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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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