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다

늦단풍이 떼로 몰려 있는 곳으로 간다

내 허름한 문간방이 있고

연탄불이 있고, 내 겨울 서재가 있는 빈집

한겨울 뼈 상한 산길 보듬고

상처 나고 깎인 길바닥 흔적 안고 간다

는개 맞고 손깍지 끼고 함께 사진 찍고 다닌 길

행여 내 이마에 노을이 내리면 노을 타고

내가 적신 것들 거두어 홀가분히 간다

종각 연화문살에 뿌려놓은 몇 개의 이름

나의 알바트로스, 어지니꽃, 하늘바다, 그림자

은빛 굴비가 새끼를 낳는, 한 포구에다

이 이름들을 흘려놓고 간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도

쓸쓸한 뒷일, 아! 이제는

인간의 근원적 고통은 사랑과 이별이다. 잎새는 바람에 흔들린 뒤 그 쓸쓸함을 멈춤을 통해 드러내며, 서정적 자아는 빈집을 통해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집은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며 언제든 돌아가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처소다. 따뜻한 사랑이 있고 희로애락이 존재하는 곳, 그런데 화자는 가족이 살아가는 집이 아닌 빈집을 택했다. 빈집은 절대 고독이 존재하는 집으로 참으로 슬픈 집이 아니던가. 시의 첫 행에서 처연한 슬픔이 묻어난다.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늦단풍 떼로 매달려 있는 곳, 허름한 문간방이 있고, 연탄불이 있고, 내 겨울 서재가 있는, 아직도 연탄불이 꺼지지 않고 기다려 주는 곳, 그곳이 어디일까? <김인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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