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만 되면 집에서 특별히 해먹는 음식이 있다. 배추 볶음이다. 김장을 하고 남은 속 재료들을 이용하는 음식이다. 때문에 사실 특별할 건 없다. 만드는 과정도 복잡해보이지 않는다. 김장 작업 시 사용하던 김칫속과 배추 그리고 기름을 함께 솥에 넣고 자글자글 볶아내면 그만이니 말이다.

김장의 남은 재료를 활용하기 위한 요량으로 만들어진 음식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고안해낸 음식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어떤 것이 됐든 지금 우리에게 있어 이 음식은 반찬으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게다가 의외로 참 별미이기까지 하다. 정확한 음식 이름도 모르고 정체성이나 족보 따위도 딱히 알려진 바 없지만, 맛만큼은 정말 기가 막히다. 커다란 배추 볶음 한 장을 결 따라 길게 쭉 찢어 밥숟가락 위에 얹은 뒤 입에 넣었을 때의 느낌이란.. 그야말로 꿀맛이 따로 없을 정도다.

김칫속과 배추가 한데 어우러진 채 볶아지면서 절묘한 맛의 지점이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조화가 예술에 가깝다. 덕분에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니 두 그릇까지 비울 수 있다.

평소 밥도둑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지만, 진정한 밥도둑은 바로 이 배추 볶음한테 붙여주어야 할 것 같다. 알려진 레시피도 없고 다른 음식처럼 족보도 없어 어디선가는 자칫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지 모를지언정, 적어도 우리 집에서만큼은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는 귀한 음식이다.

게다가 연중 아무 때나 먹을 수 없고 오로지 김장철에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희소가치까지 있어 그 맛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머니가 정성들여 만들던 이 음식을 어느덧 며느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어머니의 손맛에서 느껴지던 그 맛이 명맥을 이어가는 듯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그만큼 김칫속과 배추의 조화가 원래부터 절묘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힘든 김장 작업을 온 가족이 함께 마무리 짓고, 그날 저녁 오순도순 둘러앉아 배추 볶음을 먹을 땐 얼굴에 함박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김장을 떠올리면 고된 작업이 먼저 생각나다가도 이 배추 볶음을 떠올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절로 솟는다. 우리 집 배추 볶음은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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