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즈 강수연 기자]

지난해 12월 한국서부발전 소속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설비를 점검하며 근무하던 비정규직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고(故) 김용균(당시 24세) 씨의 사망으로 온 나라가 비탄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원인규명,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지만 원청인 서부발전과 고용노동부는 즉각적인 답변을 회피한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관련 법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 보호받지 못한 채 위험한 환경과 열악한 처우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민심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여론에 밀려 법안의 졸속처리됐고, 쳔장 책임자만 처벌하는 선에서 사태는 일단락 된 듯하다.

김 씨의 사망 이후 약 한 달이 지났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 속에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유가족과 민주노총은 '위험의 외주화'를 외치며 더 이상 반복되는 사고로 인한 희생을 막고자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며 호소하고 있다.

     ⓒ민주노총 홈페이지

사용자가 말하는 '위험의 외주화'...그 몫을 감당하는 비정규직

정부는 지난 2001년 '공공기관의 효율화'라는 명목 아래 한국전력의 발전부분을 총 6개의 자회사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로 모두 민영화로 분할시켰다.

민영화로 전환되며 경제논리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고용이 시작되면서 하청업체들의 경쟁 속에 원청은 최저가 입찰로 계약을 맺는, 일명 '외주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원청은 직ㆍ간접적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뿐더러 인건비, 안전관리 등에 들어가는 실비까지 절감하기 시작하는 재미를 봤다.

계약을 통해 외주업체가 된 하청업체들은 입찰을 따내려 손실 본 금액을 노동자에게서 메꾸기 시작한다.

결국 실제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발전소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근무를 하다가 사고를 당하고, 당해도 책임자가 뚜렷이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에 관계자는 "입찰을 위해 업체들은 최저가를 무리하게 단행한다. 인건비, 안전관리비 등은 이미 암묵적으로 정해진다. 아무리 인력 충원을 요청해도 무리가 있다"며 "또한 원청의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다음 계약에 불이익을 받게 되니 관리자들이 주는 압박이 심하다. 안전을 챙기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업계를 대변했다.

반복되는 사고…"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건ㆍ사고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까지 최근 5년간년 작업 중 숨진 노동자 109명 중 93명(85%)이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또한, 최근 5년간 발전소 안전사고 346건 중 337건(97%)이 간접고용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발생했다.

지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 난 스크린 도어를 고치던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 김 씨가 들어오는 열차에 치여 숨졌다. 당시 '2인 1조' 근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2017년 11월 태안화력발전소 3호기에서 보일러 협착사고로 하청노동자 정모 씨가 숨졌으며, 지난해 4월 역시 남동발전의 삼천포 화력발전소 보일러 시설에서 작업하던 하청업체 직원 박모 씨도 흔들리는 발판을 밟았다가 50여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발판을 받쳐주는 고정장치 미흡이 문제였는데, 당시 현장엔 기본적으로 설치됐어야 할 추락방지망이나 안전고리를 연결 할 수 있는 장치 모두 없었다.

그럼에도 원청인 남동발전은 별다른 조치 없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혐의로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게 전부였다..

'책임은 사망자의 몫?'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대책에 등돌린 민심

여론과 일부 정치인들은 제대로 된 실질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비슷한 사건ㆍ사고가 계속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홈페이지

지난 9일 김 씨의 유가족과 민주노총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고이후 한 달여 동안 오히려 원청인 서부발전과 고용노동부가 사고현장을 은폐하고 증거를 훼손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재인 대통령차원의 정규직 전환 약속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추가로 17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명안전시민넷 역시 고용노동부와 원청이 참여하는 규명조사는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철저한 원인 조사와 유족 측의 참여, 대책 마련 등을 대통령이 관련 부서에 지시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정부 와 현장은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덧붙여 "우리 피해자들은 형식적 조사, 이리저리 변명뿐인 원인 규명과 대책이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경험해왔다"고 비판했다.

이에 지난해 말 28년만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일명 '김용균 법'에 대해 '반쪽짜리'라고 말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일명 '김용균 법'은 도급 제한, 하청의 재하청 금지, 작업 중지권 보장, 보호대상 확대, 산업재해 예방계획의 구체화 등으로 실질적인 비 정규직에 대한 안전과 권리는 보장되지 않아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법안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고(故)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으로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경우,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사업주, 기업 자체를 처벌하자'는 내용으로 현재 국회 보류 중이다.

'자본주의 속 지킬 수 없는 지침'이라는 논란 속에 여러 번의 재발방지 대책으로도 사고를 막지 못하고 있어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포털 커뮤니티에 따르면 아이디 'bab*****'는 '돈이 사람을 죽였다, 용역이 대신 죽는 헬조선'이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어 'junjun*****'는 '고인이 정규직이었다면 저런 환경에 근무했을까, 정말 끔찍한 사망사고다', 'kkqu****'의 '최저임금 받으면서 저런 개죽음이라니 할말이 없다' 등의 자본주의 속 지킬 수 없는 지침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반면 아이디 'unbe****'는 '비정규직을 무조건 적으로 정규직화하면 또 여럿 죽는 소리 할 것같고, 원청에 예방점검과 사고 시 책임소재를 무겁게 만들어야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정규직전환만이 답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