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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벅스미션-할머니의 한복속 고쟁이 돈주머니의 세뱃돈아들만 좋아하셨던 할머니의 사랑표현법

 

 

다수의 사람들이 명절이라도

친가보다는 외가를 기억하시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그런데 나는 친가와 외가 

양가의 조모께 유독 귀여움을

받지 못하였는데 이유는 

'아들'이 아니였기 때문이고

 

내 아래로 남동생이 태어났기때문에

더더욱 나는 할머니라는 명칭이

그렇게 다정하지 않았더랬다.

 

나의 친할머니께서는 거의 

명륜동 고모님 댁에서 머무르시곤

하였는데 늘 옥색한복 아니면 미색한복에

머리는 옛날분 그대로 비녀를 꼽고 계셨다.

나역시 친할머니의 그모습도 별로라고, 촌스럽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초등생시절 명륜동 고모집에 겨울방학이라

놀러갔다가 남동생만 간식을 챙겨주시는

친할머니에게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 나만 먼저 아버지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친할머니는 항상 나를 '놈새'라고 부르셨고

원래 이름을 놔두고 욕같이 부르는 그소리가

어린마음에도 정말 싫었지만 나중에 나이를 

 

먹고 알게된 사연인즉슨... .

나를 '놈새'라고 부르면 내아래로 남동생이 

태어날거라고 어느 무속인이 말했기 때문에

내이름이 외계인 이름이 되었던 것.

 

여하간 명륜동 고모집 사건 뒤로

명륜동에 절대로 가지 않았고

 

친할머니를 설날 잠깐 세배를 드리는 것으로 

할머니에 대한 일반적인 애정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던

설날 다음날 친할머니께서 나를 부르셔서 

죽도록 싫어하는 명륜동 한옥집엘 어머니와

함께 갔더랬다.

 

할머니는 달달달달 드르륵 드르륵

손잡이 달린 시커먼 미싱앞에 앉으셔서

한복을 만드시고 계셨고

 

어머니와 나는 한 참 그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아야 했는데 

어머니께서 잠깐 나가신 사이 

미싱을 멈추신 할머니께서 한복치마

안쪽 고쟁이 부근에서 부스럭~~

무언가를 꺼내시고는 내게 '이리와 보라'

 

하시면서 내손에 잘 접혀진 파란색 지폐를

쥐어주시며 예쁘게 지어진 색동저고리와 

분홍 한복 치마를 선물로 주셨다.

 

영 납득이 가질 않았지만 어쨌든 

횡재한 나는 친할머니께서 손수 지어주신

한복을 입고 세뱃돈까지 챙긴 친척 중

 

유일한 손녀가 되어 기쁜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후 친할머니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뵌 적이 없다.

 

친할머니께서는 대전으로 혼자 사시겠다며

내려가셨는데 대전집에 한 번도 내가 가족들을

따라 나선적이 없기때문이다.

 

이제는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한복과

그 한복 고쟁이에서 잘 접힌 네모 반듯한 

만원짜리 지폐한장의 기억은 나에게 그다지 친근하게

다가오는 의미가 되질 못하고 냉냉한 기운만 돈다.

 

친할머니의 한복속 고쟁이 바지에는

주머니가 있었는데 그게 유일한 친할머니의

지갑이었다고 한다.

 

젊은나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머슴살이 하시던 분들을 모두 

 

내보내신 후 험한 집안일을 혼자 감당해 

내셨다던 '몸빼바지 할머니'가 별명이셨던

친할머니.

 

그래서 더 한복에 집착을 하시고

아들에 집착을 더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설연휴가 지나고 북적대는

삼성동 코엑스몰의 싱가미싱들이

쭈~~욱 전시된 것을 보니

문득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조금만 나이를 먹고 철이 들었었다면

친할머니와 가까워 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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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플(samsin2011) 2019-02-11 18:48:20

    글을 읽으니 저도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네요.
    옛날 분들은 다 남아선호를 하셔서...
    저도 오빠들을 더 좋아한다고 느꼈던적이
    있었어요.ㅎㅎ   삭제

    • trueimagine(trueimagine) 2019-02-11 11:58:14

      옛날 어른들 모습이 대부분 비슷하셧죠 힘든 시기를 사셨기 때문에 고쟁이 지갑이 생활화 되셨을 겁니다. 저희 집안 어른들도 그런 모습이 일상이셨습니다.   삭제

      • 바라보기(qkfkqhrl) 2019-02-11 09:50:56

        글 잘읽었습니다.
        가정사가 읽혀지는 듯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은 큰 사랑을 감추어두고 사셨던것 같습니다.
        고쟁이속 주머니...   삭제

        • 마르스(next667) 2019-02-10 16:51:03

          옛 어른들에게 아들이란 존재는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도 위로 언니가 있고 제 밑으로 남동생이 있는데... 할머니께서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진 절 안아주시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불과 30여년 전만에도 아들을 귀히 여겼는데... 지금은 딸은 더 선호하는 세상이 됐으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삭제

          • 메이블록(maybugs) 2019-02-10 11:36:36

            잔잔한 글 잘 봤습니다. 후원 드리고 갑니다.   삭제

            • 투럽맘(twolovemom) 2019-02-10 10:03:08

              필푸리님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잔잔하게 느껴지는것 같아요..
              어릴땐 당장 눈앞의 행동이나 마음이 보이는데..
              지나고 보면 그것이 바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거..
              저도 어릴때 엄마 할머니가 주섬주섬 고쟁이에서 사탕꺼내주시던게
              어렴풋이 생각이나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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