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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 유지, 상실과 두려움카쿠코 매거진 산문

   의존을 축으로 돌아가는 관계는 좋아하지 않지만(내 선호도와 상관없이 이런 관계는 금세 끝나 버린다. 많은 마음들이 서둘러 지치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어떤 형식으로든 필요로 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동의한다.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정신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뭘로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 때, 관계는 유지 가치를 지닌다. 필요하다는 말이 좀 그렇다면 원한다고 할까. 서로가 서로를 원한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가치나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단순히 이용하는 것 이상의 이끌림이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단지 이용만 하기 위해 유지되는 관계도 있겠지만(이런 관계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내가 이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더는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번씩 있다. 내가 나로서 이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역할들이 모두 끝난 것 같을 때. 이 사람에게 나라는 사람이 또 어떤 쓸모로 작용할 수 있을지 문득 알 수 없을 때. 나는 두려워한다. 그 사람의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에게 내가 더는 필요 없다는 느낌이 죄의식으로 바뀌어 나 혼자 내린 판단으로 그 사람을 떠나게 될까 봐.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쓸모 없음을 알아차린 그 사람이 나를 느리거나 빠르게 버리게 될까 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가 있듯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항상. 지금도 어느 정도는. 한 번 인연으로 엮인 사람과 나는 영원히 서로를 필요로 하기를 바랐다. 순리를 역행하는 돛단배 위에서 나는 팔에 쥐가 나도록 가느다란 노를 저었다. 순리라는 것은 역행하려 한대서 역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관계가 깨질 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억지스럽게 뭔가를 할수록, 관계의 균열은 길어지고 깊어졌다. 

 

 

   상실. 내가 삶에서 배우기 가장 까다로워했던 과목은 상실이었다. 나는 그 과목을 깨우쳐 나가는 동안 자주 낙제점을 받았다. 상실을 습득하기 위한 여정을 스스로 상실한 채로 현실에서 도피해 있기도 했다. 그런다고 헤어지고 멀어지고 잊어지는 일이 삶에서 누락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똑같은 상황을 두고 두려움을 느낄 때, 그들이 똑같은 종류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용이 다른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어느 날 깨달았다. 어떤 문제 상황 뒤에 올지도 모를 상실이 두려워 내가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내 옆에 선 누군가는 어떤 문제가 들추어 낼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누적될수록, 나는 사람의 두려움이라는 것이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이거나 삶의 뒷면 내지는 안쪽 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고 싶을 때는 그 사람의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 보는 것이 꽤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도 느꼈다. 물론 상대의 허락을 구한 다음에 그래야겠지만. 

 

 

   가장 사랑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을 낳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고백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발바닥이 녹아 버리는 것 같다. 그 사람 삶 한가운데 고여 있던 모든 빛이, 거칠 것 없는 환한 진실함이 나에게로 와락 쏟아지는 것 같아서. 누가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 나에게는 그런 것이어서. 은밀히 기억해 놓았다가 수틀릴 때 공략할 약점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잘 보이게 걸어 놓고 오래도록 조심스럽게 대해 줄 아픔이 등장하는 순간……. 얇은 천 하나 덮지 못한 누군가의 심장을 내 두 손바닥으로 받아 내는 듯한 순간. 

 

   자신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공유한 사람과 가장 끈질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날들의 비밀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저 사람에게는 솔직해질 수 있다는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에 대해서도 나는 알지 못한다. 

#산문#에세이#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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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라보기(qkfkqhrl) 2019-02-11 15:27:26

    오늘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상실은 꼭 내가 뭔가 가지고 있을 때만 갖는게 아님니다. 없다고 상실 할게 없는게 아니지요.
    아직은 살만하다는 친구가 염려스러워 한마디 건냈습니다.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상실을 느낄수 없도록...
    용감한 친구가 상실이 두렵겠는가 그러나 새로운것을 찾지 않으면 그 두려움이 언젠가 찾아 온다고 생각되기에...   삭제

    • (moojin5403) 2019-02-11 10:54:35

      사람 마음은 항상 상싱삼과 허털함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 이 현재에 만족한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삭제

      • 한주포토(arisong48) 2019-02-11 10:44:37

        상실이란...두려워한 부분 이점에서 공감이갑니다 심오하고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감기조심하세요 날이춥습니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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