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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이상했던 졸업식

 

   마냥 순탄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 같은 건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모든 학창 시절 안에는 그 나름의 행복과 기쁨과 감사와 떨림 그리고 감동이 있었다. 하여 조금도 슬프지 않은 졸업식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졸업식에서 섭섭함과 상실감을 느꼈다. 단순히 친구들,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였으나 재미있고 따뜻했던 한 시절을 덮고 새로운 시절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에서 일말의 서운함과 망설임을 느끼기도 했다. 오래 정 붙인 공간을 떠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시간이라는 관념 자체와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갔다.

 

 

   내 기억에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졸업식은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그 즈음 많은 아이들이 그러했듯, 나도 엄마와 자주 다투며 살았다. 엄마도 나에게, 나도 엄마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어 너무 큰 실망을 했으며, 그 실망감을 잘 다루어 내지 못해 많이 싸우고 서로를 오래 노여워했다.

   지금 엄마와 그때 이야기를 하면 서로 "왜 그랬나 모르겠다. 싸울 일 아닌데도 부딪치기만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참."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웃는데, 그때는 당시의 이해 능력을 더 키워서 서로 더욱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생활고에 치이고 나는 수험생 생활에 치여서 앞만 보고 지내느라 바빴다. 무엇에도 선뜻 너그러워지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가장 막역한 서로를 가장 홀대하는 것으로 인생에 대한 화풀이를 대신하며 살아간 건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 한 짓이었지만 그 과정은 출혈을 동반했다.

 

 

   수능을 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와 싸웠는데, 뭐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내 졸업식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졸업식장에 나타났다. 할머니와 큰이모까지 데리고.

   당시 나는 문과 대표로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걸 보려고 온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졸업을 축하해 주려고 온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왔다. 엄마가. 무표정하게. 나는 큰이모가 건네주는 꽃다발을 받고 얼떨떨해했고, 엄마는 그 날 아무 말 없이 자리만 지켰다. 식당에서도. 

   기껏 졸업식까지 찾아와 놓고도 뚱하게 있는 엄마가 밉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화가 덜 풀렸을 텐데도 엄마가 내 인생의 작은 마침표를 축하해 주러 걸음을 했다는 것이. 한 번 안 한다 하면 절대 안 하는 성격,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을 가진 엄마에게서 작은 틈을 처음으로 발견한 날이었다. 마음이 이상했고 자꾸 이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감정적으로 복잡한 하루였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도 오랫동안 '어른인 엄마도 불완전하고 서투를 수 있다.'는 관념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가 나와 싸울 때마다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고 단순히 생각했지, 엄마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 어려워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엄마 쪽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엄마가 어른이라는 이유로, 엄마는 내가 당신의 세월보다 똑똑한 세월을 산다는 이유로, 서로가 모든 걸 잘 알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내 관계를 자꾸 아프게 만드는 무지를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안전하게 걸어 갈 수 있도록 대화와 배움을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어른이 되는 것과 인간관계에 능숙해지는 건 너무나도 별개임을 조금씩 깨우쳐 나가며, 엄마와 나는 서로의 불완전을 끌어안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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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라보기(qkfkqhrl) 2019-02-12 20:05:54

    다빈님의 글은 읽는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네요. 옆사람과의 대화같기도하여 정겹고 공감가는 얘기는 나를 둘러보게 합니다.
    잘봤습니다.   삭제

    • 필푸리777(osj78028) 2019-02-12 18:46:09

      옛날 어른들은 딸과 어머니,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버지와 아들이 다투는 것들을 신싸움이라고 절대 말려들지 말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돌아가신 조상분들은 집착만 남아서 자꾸 훼방을 놓기도 하고 단순한 관념으로 도둑질도 시킵니다. 그러고는 그 신은 조용히 사라지죠. ㅎㅎㅎ 넘어가지 마세요.
      어머니의 삶을 잠시 돌아보시고 어머니께서 화가 나 있다면 그것도 존중해주세요 존중이란 타인의 어떤것도 품고 바라봐 주는 것 아닐까요. 지독한 산후통 그것은 한국어머니들만 아시는 아주 무서운 고통입니다. 좋은글 추천, 후원드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삭제

      • 투럽맘(twolovemom) 2019-02-12 13:36:36

        다빈님의 글이 정말 많이 공감되네요..
        제가 엄마랑 사소한 걸로 내 맘을 이해 못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 제가 또 아이를 가져서 느끼는 감정이랑 똑같이 서투니까 말이예요..
        제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는것 같아요..   삭제

        • 사랑의힘(Leo888) 2019-02-12 03:52:34

          그런것 같습니다. 엄마도 매 순간 매순간이 새롭다는것을요. 자녀를 상대할때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할까 생각하니 저희 어머니가 생각나군요.   삭제

          • 인의예지신(ysihb22) 2019-02-12 01:53:38

            나이를 먹고 자식을 키우면서 점점 알게 됩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이러셨구나... 이해라는 게 말이 쉽지 참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삭제

            • 세일링라이프(zht419) 2019-02-11 23:17:13

              만남에 있어서는 헤어짐이 있는것이고 그게 인간관계에서의 상대적이던 개인의 나만의 소속집단에서의 헤어짐이던 참 서운하고 아쉬운것 같습니다.
              "나는 모든 졸업식에서 섭섭함과 상실감을 느꼈다. 재미있고 따뜻했던 한 시절을 덮고 새로운 시절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에서 일말의 서운함과 망설임을 느끼기도 했다. 오래 정 붙인 공간을 떠나는 순가이 많아질수록 시간이라는 관념 자체와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갔다." 포스팅속 구절이 정말 공감이갑니다. 이맘때즘음에 좋은글 감사합니다!   삭제

              • 하동댁이(gkrnlsus) 2019-02-11 20:18:15

                졸업은 항상 슬픈것 같아요 ~~
                지금은 아이들 졸업식장을 가는데 갈 때마다 눈치없는 내 눈물이 줄줄줄.....
                이번엔 안울어야지 하면서도 눈물이 그냥 나오더라구요 ㅠㅠ
                음악만 들어도, 담임선생님을 만나도, 그리고 졸업 앨범을 받아도 그냥 눈물이 나더라구요..." 엄마 또 울어?" 라며 딸의 타박을 들으며 눈물을 닦았죠 ㅋㅋ   삭제

                • () 2019-02-11 20:18:05

                  글이 진정성이 느껴지네요~ 저도 졸업식을 한지 오래되었는데 이제 옜날일이 되었네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삭제

                  • momo(kondora) 2019-02-11 19:14:49

                    옛 어른들 말씀에 부모가 되어야 부모마음을 안다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저도 어릴때는 이말을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모가 되다보니 모두 다 이해가 되더군요..
                    성인이 될때까지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지낸다면 큰 문제는 없을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렇게 지내는게 힘들뿐이죠..ㅎㅎ
                    이젠 성인이 돼었으니 부모님과 좋은추억 많이 만드시길 바래요.ㅎㅎ   삭제

                    • 메이플(samsin2011) 2019-02-11 18:05:45

                      글을 읽으니 어릴 적 나를 돌아보게 되네요.
                      지금은 엄마가 돌아가셔서...
                      엄마란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난답니다.
                      옆에 계실때 잘해드리세요.
                      나 자신을 위해서래요.
                      후회하지 않게...   삭제

                      • Jesse_h(branewd) 2019-02-11 18:02:24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 것 같네요. 어쩌면 계속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구요 ㅎㅎ 이제는 엄마와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날들만 남았네요. 힘 내세요~   삭제

                        • Imgosu(ytw5754) 2019-02-11 17:31:12

                          부모님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하죠.. 항상 높아보이기만 하던 분이니까요..   삭제

                          • zldzk34(zldzk34) 2019-02-11 16:52:01

                            그 시절에는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했던것들이 성인이된 후에 비로소 보이는거 같습니다. 졸업식은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인거 같습니다.   삭제

                            • 메이블록(maybugs) 2019-02-11 16:47:04

                              엄마를 이해하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순간 부터 철이 들기
                              시작하는걸까요. 졸업식과 엄마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들리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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