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금융기관에 근무하던 유아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미증유의 공포로 다가올 법한 IMF 외환위기 사태를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이고 틈새시장을 공략, 떼돈을 벌어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오로지 영화라는 허구적 장르이기에 가능했던 스토리일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시나리오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남들은 사상 초유의 공포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해하며 몸을 사리는 순간 도리어 과감히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간 뒤 당시 그가 목표로 한 바를 이룰 수 있었던 건 과연 무엇 때문일까? 

바로 남들이 갖추지 못한 세 가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배짱이다. 보통사람들은 다니던 회사에서 잘릴까봐 전전긍긍해하며 몸을 사리기 바쁜 상황에서 그는 오히려 이번에야 말로 둘도 없는 기회라고 판단, 잘 다니던 회사를 아예 스스로 걷어차고 나왔다. 보통사람들과 상반된 판단과 결정을 한 것이다. 배짱이 없었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결과물이다.

두 번째로 갖춘 건 위기 속에 진정한 기회가 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안목 내지 혜안이다. 외환위기 상황은 국가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협적인 환경을 낳았으며 이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안전띠를 매지 않은 상태에서 차가 전력 질주하다가 벽과 충돌할 때의 충격과 비슷한 파동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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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당장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 싶어 당장 이를 피하느라 주변 상황을 조금 더 넓고 깊숙이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모두가 위기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온통 그 상황에만 매몰되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유아인은 달랐다. 위기가 큰 만큼 기회도 분명 많을 것이라는 사실을 진작 간파한 것이다. 모두들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 그는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틈새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갖췄던 건 바로 돈이다. 설사 당시 기회를 포착했다 해도 유아인처럼 과감히 투자할 만한 여력이 없었더라면 모두가 그림의 떡에 불과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당시 눈앞에서 펼쳐지곤 했다. 금리가 두 자리 숫자로 치솟으면서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기만 해도 떼돈을 벌게 되는 그런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혹여 그럴 만한 여윳돈이 있었다 한들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혹은 위험을 회피하고 싶은 심정에 어디론가 쟁여놓기 바빴지 투자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할 수 없었다. 설사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게 끝장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아인은 이 세 가지를 골고루 갖춘 덕분에 영화 속에서 크게 성공하는 인물이 된다. 

문득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금리가 20%까지 치솟던 시절, 나는 도대체 무얼 했던가. 금융기관에 여윳돈만 넣어놓았어도 단기간 내에 엄청나게 불어났을 텐데, 배짱이 없어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다. 주식시장은 또 어떤가.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공포감 때문에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었잖은가. 기업의 가치가 그토록 헐값이 되는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텐데 말이다. 당시 아무 기업의 주식이라도 하나 건져놓았으면 지금쯤...

생각할수록 아깝고 안타깝다.

Nom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