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구도
신석정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날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더뇨.

1907년에 태어나 1924년에 처음 시를 발표하고 타고르의 영향을 받아 전원적 목가적인 낭만주의 시를 쓴 시인의 작품이다.

당시 자연은 현실의 부자유와 비애의 고뇌로부터 다소라도 위안을 얻기 위하여 시인들이 즐겨 시의 대상으로 삼았던 세계이다.

構圖(구도)는 지구와 대비를 갖는다. 지구, 세계의 힘의 논리를 거부하는 시인에게는 어디에도 숨을 곳조차 없다. 

꽃 한송이, 새 한 마리, 노루새끼 한 마리가 시인의 감정이입이다. 더 나아가다가는 밤이고 그 밤도 밀리고 흐르고, 흘러도 흘러도 검어질 뿐이다.

시인에게 희망이라고는 멀리 있는 하늘이요, 산이요, 별이다. 

그러나 밤하늘에만 별은 빛난다. 희망은 절망에서 싹이 튼다. 희망은 다시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새가 무리 지어 나르고, 노루새끼들이 뛰어다닌 발자국이 황토 위에 찍히고, 거기에서 또 꽃씨가 황토를 덮고 뿌리를 내릴 것이다.

sd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