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콩을 직접 볶아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커피콩의 볶음 정도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커피가 내려지는 속도도 달라진다.

   커피콩에 200℃ 안팎의 열을 가하면, 그 안에 있던 수분이 기체로 바뀌면서 콩 밖으로 분출된다. 가스와 열도 분출된다. 각종 화학 반응도 일어난다. 로스팅이 일정 시점에 다다르면 콩에서 “탁, 탁!” 하는 제법 큰 소리가 나며 1차 크랙이 일어난다(이것을 1차 팝, 1차 팝핑이라고도 한다). 팽창된 콩 조직이 깨지는 소리다. 여러 가지 기체로 인해 압력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콩이 내부 기체들을 토해내기 때문에 콩 조직이 깨지는 것이다. 작은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로스팅을 계속 하다 보면 이번에는 콩에서 “찌직, 찌직.” 하는 소리가 난다. 1차 크랙 소리보다 작고 잘게 쪼개어진 소리가 나는 것이다. 깨 볶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

   1차 크랙에서 주로 깨어지는 조직이 콩 외부 조직이라면, 2차 크랙에서 주로 깨어지는 조직은 콩 내부 조직이라고 한다. 열이 콩 깊숙한 데까지 침투하면서 콩 곳곳의 조직을 깨는 거라고. 2차 크랙이 일어날 때도 다양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기체가 발산되기도 하고.

   1차 크랙과 2차 크랙을 거치며, 커피콩은 느슨한 조직을 가지게 된다. 콩을 많이 볶을수록 커피콩 조직은 더욱 느슨해진다. 촘촘하던 생두 조직이 여러 구멍을 가진 원두 조직으로 바뀐다. 다공질 조직이 되는 것이다. 실제 현미경 관찰 사진을 보면, 생두 조직에 비해 원두 조직은 벌집 같다. 로스팅이 진행될수록 구멍이 더욱 커진다.

   로스팅으로 인해 커피콩 세포벽 안쪽에 공간이 생긴다. 뜨거운 물이 그리로 들어가 수용성 커피 물질을 녹인 뒤, 커피 원액으로 탈바꿈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스프레소, 핸드 드립 커피는 이렇게 탄생된다.

   커피콩을 볶다 보면, 사람이 느슨해지는 일이 커피콩 조직이 느슨해지는 일과 비슷한 경우가 있음을 생각한다. 나는 별다른 외부 자극 없이 느슨한 마음을 먹을 때도 있지만, 미친 고열 같은 고난 끝에 느슨한 마음을 먹게 될 때도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안목이 커졌다고 할까.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 마음에서 추출된 커피 한 잔은 엄청나게 깊고 풍부한 향미를 지녔다. 그리고 숯처럼 까맣게 타 버린 사람 마음에서 추출된 커피 한 잔은 씁쓸하다. 모든 사람 마음에서 나오는 커피는 모두 제각각이다. 너무나도 제각각일 것이다.

   사람마다 커피 취향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사람 취향도 다 달라서, 누군가는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좋은 향을 느끼고, 누군가는 우여곡절을 숱하게 겪은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좋은 향을 느낀다. 누군가는 전소에 가깝게 타 버린 마음에서 가장 좋은 향을 느끼기도 하겠다(이 경우가 그리 와 닿지는 않지만, 내가 짐작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런 경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내 마음을 느슨하게 만드는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이긴 한데, 그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의 조직이 느슨해지는 만큼 나는 나와 타인에게 유익한 뭔가를 추출해 낼 수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타 버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결국에는 없듯, 극단적으로 타 버린 내 마음에서 나온 뭔가가 나와 타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 또한 결국에는 없을 것이다.

   알맞게, 알맞게.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