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외할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연장자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다른 집안 어른들도 다 그러신 줄은 모르겠는데

우리 집안 어르신 분들은

우리 세대 아이들에게 정말 지시적이었다.

‘이렇게 살아야 옳다.’는 관념이

너무나도 확고한 분들이 많았다.

조부모님 세대 분들도 그랬지만

부모님 세대 분들도 그러했고

따라서 나는 유년 시절 대부분을

집안 어른들과 다투면서 지냈다.

싫다는데 제발 강요 좀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내 인생의 목표는 제발 나 스스로 정하고 싶다고 하면서.

우리 집안에서 가장 주체적인 사상을 가진 나는

다른 애들이 다 잠자코 “예, 예.” 할 때

“아니요!” 하는 애여서

모난 돌이 정 맞듯

꾸지람을 한데 몰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이 잔소리하시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으면 되었을 걸 싶은데

그때는 그게 너무 싫어서

몸서리가 다 쳐졌다.

나를 키워 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와

그들의 억압에 대한 분노 사이의 골이 너무 깊어서

혼란한 유년을 보낸 것 같다.

(지금은 감사만 남아 있다.

그런 양육 방식이 당시 그 분들의

최선임을 이제는 안다)

 

내가 사범대에서 자퇴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때

나는 집안의 원수가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원수는 물론

최고 통치권자를 가리키는 원수(元首)나

군대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원수(元帥)가 아니라

원망하는 대상인 원수(怨讐)를 의미한다.

어찌 선생 자리를 버리냐고.

공무원을 마다하냐고.

 

내가 서른이 다 되어 갈 무렵까지

집안 어르신 분들의 간섭이 끊이질 않아서

1년에 한두 계절은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지내곤 했다.

 

그때 잔소리를 듣던 애들이

지금은 부모 세대가 되었다.

나와 항렬이 비슷한 내 또래 친척 가운데 일부분이

자신의 연소자를 대하는 모습에서

우리 집안의 가풍 같은 것을 본다.

무형의 그것이 대물림된 것이다.

 

백 번 천 번 똑같이 반복되는 잔소리도

함부로 하는 간섭도 너무 싫었던 나는

(어떤 세대의) 누굴 만나든 오래도록 말을 놓지 않고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절 질문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

그런 내 모습에 한 번씩 안도한다.

너무 싫어하는 모습을 결국은 닮고 마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그런 어른이 되지는 않은 것 같아서다.

그런 동시에 내 유년의 양분을 제공해 준 그 분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들에 대한 감사와

그들을 향한 분노는 균형을 맞추어 가다가

나중에 그 분노가 사라지면서

비로소 나는 그 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싫어했다고 해서 그 분들의 방식이

틀렸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평생을 고군분투하였다.

어려서는 내가 받는 것이 피해 같더니

지금은 내가 받은 것이 죄다 최선으로 보여서

딱히 화해할 과거가 없는 것 같다.

내 인생을 쥐고 흔들려고 했던 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듯

(그렇게 살아야만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그들은 믿었으니까)

있는 힘껏 그들에게 저항한 것도 내 나름의 최선이었다.

각자가 각자의 인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이런 궁극의 이해가 용서인가 싶다.

그들이 밉지 않고

내 쪽에서도 억울함을 가지지 않는다.

과거가 비로소 과거로 남는 지점을 조용히 지나쳐 왔다.

 

모든 게 이미 지난 일이니 지난 일로 두자는 마음도 있고

더 나빴을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도

무사히 무탈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 또한

하나의 행운이고 행복이고 축복임을 유념하자는 마음도 있다.

 

여전히 가족들을 만날 때

어르신 분들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잔소리를 듣는다.

사범대 그만둔 게 언제 적 일인데

여전히 그 일로 나를 혼내는 분들도 있다.

공무원 안 하고 프리랜서 한다고.

지금은 그 분들이 뭐라고 하시건

나는 동요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표면적으로도 그렇다.

그 분들이 싫지도 않다.

그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그 분들 자유이듯

내가 나대로 살아가는 것 또한 나의 자유일 터.

그 분들이 내 자유를 침해하려 하면

나는 고요히, 고요히, 자리를 옮긴다.

그 분들의 사고방식을 존중하면서

내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일과

내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참 섬세한 일이어서 가끔은 이것이 하나의 예술 같기도 하다.

 

#산문#에세이#연장자#인간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