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로가 포장되지 않은 흙길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청도 깊은 산 골짜기에서 태어나 

진흙과 짚을 섞어서 만든 흙벽돌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아버지와 함께 직접 살구나무를 베어내고 우물을 깊이 파기도 했다.

매일 학교를 다녀오면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올려보낸 우리 집 소가

산꼭대기 어디엔가 풀을 뜯고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올라 동네 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진돌이도 하고 양말뭉치공으로 야구도 하며 놀았다.

산이 주는 열매들을 따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되면 골짜기를 흐르는 물을 마시며 양 손 가득 산딸기와 뽕나무 열매와 야생열매들을 채집하고 다녔다.

하지만 군대에 갔다 온 후로 도로가 포장되고 사람들의 관광이 시작되었다.

물은 완전히 오염되었고

산 속, 보리수 열매와 다래는 종적을 감추었다.

나도 대구시내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내는 대구토박이이고 아이들 셋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아파트는 강을 바라보고 있다.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아파트 곳곳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아파트를 둘러 연산홍이 피어있다.

산수유가 열매를 맺었다.

우리 집에서 창 밖에 벚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있고 그 너머 강이 흐르고 그 너머 산들이 둘러 있다.

그러나 아내랑 아이들 중에 이 소중한 조경을 인지하는 이들은 없다.

아무도 연산홍 꽃잎의 낙화에 내려앉은 빗방울을 보려하지 않는다.

아무도 엉겅퀴가 빗물을 양손에 받아 보석처럼 간직하고 있는 물방울들을 보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이제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네잎 클로버를 찾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우리 세 딸이 흙을 밟고 대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하고 싶다.

이제는 내 고향 청도의 산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산에는 옛 길은 사라지고

조화롭던 유실수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산딸기, 다래넝쿨은 덩쿨째 뽑혀 몸보신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엑기스가 되어 사라졌다.

아내가 말한다. 

"우리 딸들에게 네 잎 클로버 찾아오라고 하면, 폰검색할 걸 ^^"

청도엔 아직 어머니가 산을 지키고 계신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유모차를 의지해 걸으시지만,

산이 주는 유실수들과 나물들, 특히 고사리농장을 운영하신다.

이젠 돌아가신 지 몇 년인지 손가락으로 세어보아야할 정도가 된 아버지가 

그 산에 고사리 포자를 퍼트리셨다.

지금 어머니는 치매와 싸우고 계시지만,

아버지의 육신을 묻은 산소 옆 고사리밭에 격일로 오르신다.

나는 우리 딸들의 인문학적 소양과 삶의 풍요로움을 대자연에서 발견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예쁜 신발과 옷이 흙에 묻히지 않으려고

청도에 가도 방 안에서 휴대폰만 들고 있다.

문학작품 속에서도 대자연은 사라지고, 인공물들만 등장한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고 그 열매를 먹은 산짐승들이 쏟아내는 씨앗들이 다시 싹을 틔우는 세상은 사라졌다.

이젠 씨앗마저 몬산토로 대변되는 유전자조작종자회사들이 장악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흙을 밟게 하고 싶다.

떨어지는 꽃 잎을 적셔주는 이슬을 만져보게 하고 싶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유한한 인간이 자녀를 낳아 다음 세대를 이어가게 하는 것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꼰대 밖에 될 수 없으니, 이것이 걱정이다.

sd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