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빌려 보던 시절

10여년전만 해도 동네마다 비디오와 책대여점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회원제로 한달내내 책과 비디오를 대여받는 우수 단골이었다.

남편은 만화책, 아이들은 비디오, 나는 판타지, 스릴러에 빠져 있던 때였다.

비디오대여점의 수입을 많이 올려주는 일등 단골이었다.

무엇보다 남편의 만화책 사랑이 한 몫을 했다.

나는 아무래도 소설이다보니 상하로 되어 있거나 한 권을 빌려와 밤새 읽고 또 다음권을 빌려오는 편인데 남편이 빌려오는 만화책은 기본 20권에서 그보다 더 넘어간다.

당시 나는 솔직히 만화책을 읽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만화책을 볼까봐 염려되었다. 서점에 가도 한창 역사나 인물전들이 만화로 나왔는데 그걸 사달라는 것이 아빠에게서 영향받아서라고 생각했다.

온통 그림천지인 인물전을 돈 주고 사는 것도 아까웠고 아이들의 독서습관이 만화로 길들여질까 걱정이 앞섰다.

30~40권을 빌려온 남편은 밥먹을 때만 빼고 침대에서 만화책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과 놀아줄 생각도 안했다.

그 문제로 인해 몇 번 잔소리를 하자

''만화도 책이다. 난 독서를 하는거야. 아이들에게 독서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거라고.''라고 당당히 말한다.

나름의 즐거움이라고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취미로 받아 들였다.

그렇게 남편이 다 보고 난 만화책 반납은 내 몫이었다.남편은 반납일자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연체금을 자주 물었다. 그리고 한 번은 남편이 친구들과 빌린 만화책을 돌려 읽다가 반납일도 지나고, 책도 분실해서 돈을 다 물어준 적이 있어서 그때부터 꼭 집에서만 읽으라고 했고, 반납은 내가 책임진 것이다.

만화책을 쌓아 봉투에 담으려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빌려오는 책은 한 두권으로 얼마 안하는데 남편의 만화책은 '도대체 이게 얼마야?'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들의 남은 밥이 아까워 다 먹어치우는 엄마처럼 남편만 읽고 다시 반납하는 게 너무 아까운 마음에 '그래 나라도 보자' 하는 마음으로 봉투에 담는 걸 미루고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근데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남편이 남긴 잔반처리를 하듯 그가 읽은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름 두 사람이 보니 실속도 챙긴 것 같았다.

근데 생각외로 만화책이 그저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름의 스토리와 감동도 있었다.

내가 만화책을 같이 읽으니 남편은 더 당당하게 자주 만화책을 빌려왔다.

삼국지만큼 무협지도 꿀잼이었다.

원래 나는 부류 안가리고 닥치는대로 읽는 잡식파였다.

아이들과 명탐정 코난을 볼 때도 내가 더 빠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은 그 만화책도 안보고 게임에 빠져있다.

각자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전자책을 보고,영화를 보느라 서로가 정말 다 따로국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