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사람이 몇 있다.

그들과 나는 정말로, 정말로

자신에게 여유 시간이 날 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느긋한 기분으로 서로에게 답장을 쓴다.

하여 어느 때는 몇 달 만에 답장이 오고

어느 때는 닷새 만에 답장이 오기도 한다.

나도 몇 달 만에 답장을 쓰거나

하루도 안 되어 답장을 쓰기도 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메일을 주고받는 것이다.

마음이 내킬 때만 이야기를 꺼내고

귀가 열릴 때만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정해진 메일 교환 루틴 같은 것이 없기에

답장이 빠르거나 늦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우리는 편지의 내용에만 신경을 쓴다.

어떻게 보면 신기한 관계 방식이다.

내 일상에는 이런 관계가 없다.

일상적인 관계는 언제나 즉석에서 일어나니까.

‘읽었으면 바로 답장을 쓴다.’라는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메일 교환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답답할 수 있겠으나

사실 나에게 이러한 메일 교환 방식은

자유로워서 참 좋다.

나와 이런 식으로 메일을 주고받고 지내는 사람들은

몇 년째 나와 이렇게 메일을 주고받고 있으니

그들의 습성도 어느 정도는 내 습성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와의 메일 교환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좋은 일이겠다고 생각한다.

급한 연락은 다른 경로를 통해 따로 주고받고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공유하는 메일은

가장 여유로운 시간에

가장 여유로운 마음으로 쓰고 받는다.

4월에 나는 텃밭에 씨 뿌리는 일들을 메일에 적었다.

4월에 보낸 메일의 답장이 오늘 왔고

나는 그 답장과 함께 그때의 나를 만난다.

그때 내가 그렇게 살았구나, 생각한다.

한 달도 꽤 긴 시간이구나, 싶다.

10대와 20대 전반을 돌아본다.

그때는 참 많은 규칙들과 함께 살았던 것 같다.

그때는 그 모든 걸 지키는 것이 내 행복이었다.

일상이 촘촘할수록 나는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규칙 없는 규칙 속에서 행복감을 맛본다.

옳고 그름은 없고

언제나 그 날, 그 날의 선택만이 있는 인생.

5월이 벌써 열흘이나 흘렀다.

행사가 많은 달이라 시간이 뭉텅뭉텅 지나가는 듯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언제든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생이라니

참 고마운 생을 살고 있구나.

할 이야기가 늘 있는 생이라는 것도

참 고맙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