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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장면 [피아니스트]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안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통조림 한 통을 발견한다.
지독한 허기에 시달린 그는 통조림을 딸만한 것을 찾다가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는 독일군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는 유태인이었다.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에 의해 가족들은 무참하게 학살 당하고, 그를 도와주던 손길도 끊겼다.
홀로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지독한 추위와 허기를 견디며 몸을 숨긴채 외로움과 공포속에 갇혀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독일군 장교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그는 저항할 힘도, 도망갈 틈도 없이 얼어버리고 만다.
독일장교는 앙상하게 여윈 그에게 무얼 하고 있었는지 물어온다.

그는 통조림을 따려고 했다고 말한다. 딱 봐도 제대로 먹지 못해 말라있었다.
독일군의 감시망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려고 숨어 있던 그의 모습이 독일장교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그의 초조한 눈빛과 말라서 힘 하나 쓸 수 없을 것 같은 육체는 죽음이 코 앞에 있는 늙은 노인의 모습과 흡사했다.
이대로 죽이거나 끌려가게 되는 것인가?

독일장교는 그가 폴란드 피아니스트였다는 말에 연주해보라고 한다.
그 폐허된 건물에는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라는 독일장교는 좋은 사람일까?
악랄한 사람일까? 아직 알 수가 없다.
조금 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몰라 더 초조하게 느껴진다.
긴장한 그의 표정만으로 불안감은 안개처럼 짙게 깔리고 분위기마저 억압된 것처럼 느껴진다.
피아노 건반위에 그의 앙상한 손가락이 올려지고, 입술 사이로는 추위의 매서움을 노출시키는 입김이 새어나온다.
뻘건 코와 긴장된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무대위 조명처럼 햇빛이 비추어지자 그의 초라한 행상이 더 처참하게 일그러져 보인다.
이때까지 용케 잘 숨어 버텨내고 있었는데, 이제 그의 생을 위한 몸부림은 여기서 끝나는 걸까?
그의 머릿속은 지금 얼마나 복잡할까?
피아노는 제대로 칠 수 있을까?
너무 야윈 손가락 위로 다 헤어진 소매단이 더 처량하게 시야가 잡힌다. 
그러나 염려와는 달리 그의 손가락은 하얀 건반 위를 현란하게 미끄러지며 쇼팽의 발라드를 연주한다. 
그동안 숨어 지내며 숨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과 죽음의 공포와 고독으로 감성 밑바닥까지 말라 비틀어졌을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의 현란한 연주 실력은 억압된 적이 없었다는 듯이 비참함을 한순간 잊게 하고 다 날려줄 정도였다.
자신의 연주하는  선율에  취해 있기까지 했다.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물로 갈증을 채우며 내보내는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나오는 쇼팽의 발라드 선율이 왜 이토록 슬플까, 왜 이토록 저릴까, 또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
독일장교는 의자에 앉아 그가 피아노 치는 모습과 선율을 감상했다.
숨막히게 정적이 돈다.
어쩌면 이게 살아서의 마지막 연주가 되지 않을까?
갑자기 쇼팽의 발라드가  장송곡이거나 생의 마지막 곡인 것인냥 그의 손가락은 진지하게 혼을 담아 음표를 뽑아냈다. 
구속되어 있는 손의 수갑이 풀린 것처럼 열 손가락은 자유를 향한  갈증을 채우듯이 건반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제발 더 길게 더 길게 연주해! 그의 연주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연주가 끝나고 그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를 총살하며 마지막으로 연주할 수 있게 해 줌에 감사하라고 그럴 것만 같았다.
드디어 연주가 끝나고 그는 다시 독일장교의 표정을 살피며 긴장한다. 
독일장교는 그가 이 춥고 어두운 폐허된 건물 어디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 물어온다.

그러자 그는 위를 가리킨다. 다락도 아닌 천장 협소한 곳에 그가 올라가 눕자 후레쉬로 비추어보고는  돌아서 나간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신이 존재한다고 간절히 믿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가 그 건물에서 빨리  도망치기를 바랬다. 한 번 발각된 곳이니 옮겨야 한다고 말이다. 
이내 군대가 들이닥칠까봐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숨어 있었고,  독일장교는 빵과 잼, 그리고 통조림 따는 도구까지 챙겨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우린 철수해.신께 감사하라.''는 독일장교의 마지막 말과 함께 그는 생존할 수 있었다.
한번씩 피아노 연주가 들릴 때면 스필만을 연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의 앙상한 모습과 함께 영화 '피아니스트'의 이 장면이 떠오른다.

#피아니스트#영화의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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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젼라이트(joysun6963) 2019-05-14 22:01:48

    와~~~
    멋진 영화~~^..^~~♡
    날 잡아 꼭~봐야징~~~
    아름다운 쇼팽곡~기대~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포스팅 잘 읽었습니닷♡   삭제

    • 은빛태양을사랑할래(yulan21) 2019-05-13 19:07:55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써주셨네요 ^^ 몸을 숨기고 있던 천장같은 곳을 후레쉬로 비춰보고 돌아서 간다는 부분이 특히 감동적이네요.. 같이 안도하게 되고요..   삭제

      • 무아딥(MuadKhan) 2019-05-12 23:00:18

        철수하면서도 굳이 다시 와서 식량을 주고 가는 독일군 장교의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아마 독일군 장교도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전했을 뿐 실제로는 예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삭제

        • 알짬e(alzzame) 2019-05-12 15:38:31

          일전에 음악 관련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음악의 위대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예로 든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생과 사를 넘나드는 장면에서 피아노의 선율이 소름끼칠 정도로 절박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삭제

          • 영s(kyoung50) 2019-05-12 13:07:13

            피아노늘 치는 순간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생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피아노...그 댓가로 독일장교는 그를 살려주고... 독일장교도 전쟁통에 메말라버린 그의 마음을 피아노를 통해 치유받았나 봅니다.   삭제

            • sdjohn(sdjohn) 2019-05-12 07:03:13

              예술이 인간감정에 강력한 호소력을 갖게되는 것은 관객의 마음상태와 관련이 있겠죠.
              독일장교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광기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피아니스트가 유태인보다는 예술가로 보였을 것 같네요   삭제

              • crosssam(crosssam) 2019-05-12 06:36:41

                '우린 철수해 신께 감사하라' 이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그가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는지... 저런 상황에서 자기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주했을 그 피아니스트의 심정... 참 짠해 오네요. 좋은 영화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삭제

                • 바라보기(qkfkqhrl) 2019-05-11 22:36:54

                  이여화 엄청 오래된 영화인데 '피아니스트' 연기자가 누군지도 저는 잘 모릅니다만 이영화 기억이 납니다. 언제적 영화지? 아닌가? 스토리가 분명 맞는데..
                  오래된 제가 본 영화가 맞다면 ...아련하군요.   삭제

                  • 소머즈(smzmr) 2019-05-11 20:42:27

                    와우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을 멋드러지게 표현하셨네요.   삭제

                    • 리엘(vlslxmyesang) 2019-05-11 20:29:39

                      피아니스트란 영화의 한 장면이군요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는 ㅋㅋ
                      정말 좋습니다 좋은 영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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