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12살에 지게를 지셨다고 하신다.

결혼도 늦게 하셨다.

어머니는 속아서 시집을 오셨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혼수로 보낸 것은 목화씨가 그대로 있는 면화였다.

어머니는, '이 집에 시집을 가려면 목화씨를 고르고 실을 뽑아 옷을 만들어 입을 줄 알아야하나보다' 라고 생각하셨단다.

아버지의 속사정은, 혼수를 장만할 돈이 없어서 뭐라도 보내야 하니, 농사지은 면화를 그대로 담아 보내신 거란다. ㅠㅠ

지금은 꽃집에서 목화도 파네 ^^

그렇게 결혼하시고 7남매를 낳으셨는데,

막내 늦둥이가 나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목소리가 크시기로 유명하셨다.

교회에 나가신 후로 가문에서 쫓겨나 화전민이 되셨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하나 없이 산 속으로 들어가셨다고 하시는데,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고생이 끝나고,

아버지는 동네로 다시 돌아와 흙벽으로 집을 짓고 사실 때였으니까.

천수답 밖에 없었기는 했지만, 굶지는 않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소도 한 마리 있었다.

쇠죽을 끓이고 남은 재가 붉은 가마솥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주셨다.

방에는 겨울에 문고리가 얼어붙긴 했지만, 안쪽에는 짚으로 엮은 뒤주가 있었고, 거기엔 흙을 떼어내지 않은 채 쌓아둔 고구마가 있었다.

학교도 다닌 적이 없으셨는데, 교회에서 한글을 떼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우렁차서 교회에서 처벌을 받아야하시기도 했다.

죄명이, 너무 큰소리로 기도한다는 거 ^^

지금은 웃지만, 그리고 그 처벌이 기록된 당회록은 찢어져 무효처리가 되었지만, 한창 사춘기였던 내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6.25참전용사셨던 아버지는 청도소싸움에 초청받아 가시곤 했다.

아직 나는 한번도 가본 적 없지만,

저기 사진 어디에 찾아보면 아버지가 사진 속에나마 살아계실 지도 모르겠다.

동네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아버지는 동네 일을 주도하셨다.

목소리만 크신 게 아니라, 동네의 굳은 일은 도맡아 하셨다.

아무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 데, 우리집만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었다.

동네에서 죽은 개나 태어나다 사산된 소나 고기는 모두 우리집에 가져다 주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돌아가신 분의 염을 혼자 도맡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해, 동네 몇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르신 돌아가시면 제 염은 누가 해 줍니까?"

이제는 장의사가 있고, 장례식장이 우리 고향 가까이에도 생겨서 다행이다.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거지들도 호강을 했다.

아버지는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거지들을 큰 길에서 집으로 모셔와, 씻기고 입히고 먹여 보내셨다.

동네 과부집에 쌀이 떨어졌다고 생각되면,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후 지게에 쌀자루를 짊어지시고 나가시곤 했다.

아버지가 소천하셨지만, 이제는 정부에서 복지를 잘 해 주어서 다행이다.

나도 어릴 적 아버지가 시키시는 심부름을 한 적이 잦았다.

복숭아 한 개도 심부름한 적이 있고, 된장 끓인 냄비도 날라야했다.

그때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손에 야산의 돌이 치워지고 과수원으로 변했다.

어머니의 평생 소원이 들논(천수답이 아닌 강물로 농사짓는 논)을 갖는 것이어서 아버지는 들논을 200평 사셨다. 정확히는 기억되지 않지만, 몇년 후에 파셨다.

나는 가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말을 할 때 마이크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귀가 아프다고 마이크를 끄라고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목청은 모임에서 항상 주도적이 되게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월요일 6교시는 HR(특활)시간이란 것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러 그 시간을 채우라고 하시고 교무실로 가버리셨다.

나는 일요일만 되면, 교회 도서관에 비치된 명작전집을 외워가야 했다.

아버지가 그립다.

내 목소리에 내가 놀라기도 한다.

아버지가 오신 줄 착각할 때가 있다.

sd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