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1월 5일(양력)

어머니가 태어나신 날이다. 

어머니는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신다.

외할아버지가 바나나를 박스채 사 오셔서 먹는 부잣집 둘째 딸이었다.

그런데 5촌당숙이 우리 아버지가 사시는 마을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5촌당숙께서 최씨 홀로 장씨 집성촌에 사시는 것이 외로워서 어머니를 중매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물어본 적이 없네 ^^

어머니는 믿고 시집을 오셨는데,

와 보니, 시어머니와 동서 형님이 모두 과부로 계셨다고 한다.

시어머니와 동서의 시집을 동시에 살아야했다.

어머니는 너무나 힘드셔서 교회를 나가시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쫓겨나 산 속에 들어가 화전민으로 살았다고 하신다.

한참이 지나 다시 마을로 내려올 수 있었다는 데, 여기까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일이다.

어머니는 내 친구들이 "야~ 놀자!"라고 나를 부르면, 거짓말을 하셨다.

내가 어머니 옆에 있는 데도, 어머니는 "막내 없다~~~"

그 시대에 우리 친구들이 놀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과 서리나 콩 서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친구들과 어울려 남의 과수원이나 밭에 서리하며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동네에서 왕따였다.

사실 나는 내가 왕따라는 사실을 나이가 40살은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지금도 내 친구들은 나를 부담스러워한다.

어머니 덕분에, 동네에서 내 친구들은 "나실댁 막내 봐라"라는 소리를 부모님들에게 들어야했다. 

내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은 거짓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어릴 적 내 생활은 집, 학교, 교회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애늙은이 짓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나도 어머니의 거짓말을 물려받았다.

내 아내는 내가 거짓말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은 엄마의 거짓말 유전이다.

"당신이 괜히 걱정할까봐 말을 안했지"

"요즘 당신 표정이 또 뭔가 이상한데, 나중에 터트리지 말고 빨리 말해"

오늘도 아내와 대화 중에 오간 말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증 치매에 걸리셨다.

엄마는 요즘 더 과거만 살고 계신다.

엄마에게 현실은 모두 거짓말이다.

나도 인생 전반이 거짓말인 것 같다.

애늙은이에,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한다고 살고 있는데, 진실을 말하는 것을 주저한다.

사실을 말하면 힘들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입만 열면 거짓말이 나간다.

엄마가 물려준 것이니까, 엄마 유전을 핑계대고 계속 거짓말 하며 살다 죽어야겠다.

진심을 나누는 친구는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내 거짓말에 속고 있는 내 친구들이 섭섭해 하겠지만,......

많은 분들이 내 거짓말을 믿고 위로를 받고 자기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고독이 나를 짓누른다.

나도 빨리 치매에 걸릴 것 같다.

많은 분들의 고통을 내가 짊어질 수는 없는 데, 

그분들의 현실을 부정하며 긍정적이고 희망을 말해주고 있는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해 버리면 정직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아니 치매효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기억하지 못하면 진실하려나~~~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들통이 날 것 같을 때 말이다.

그러나 우리 집사람 말고는 아직 내 거짓말을 다 좋아한다 ^^

sd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