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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연 강남 봉은사 일주문이 맞을까요?|

지난 주말에 강남의 명찰 봉은사를 찾았습니다. 몇시간 동안 경내에 있으면서, 점심공양으로 국수도 먹고 했습니다.

그 값을 "봉은사에서 북한산이 보일까요?"라는 의문으로 해야겠습니다.

▲ 봉은사 일주문. 1950년대 초, 종군기자이셨던 고 임인식 선생님의 사진작품. 멀리 도봉산이 보이고, 그 앞에 그리 높지 않은 또 하나의 산(아마도 현재 뚝섬 뒤편 쪽)이 있으며, 다시 그 아래 가로로 길게 이어진 선으로 하여 시각적 공간 분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긴 선이 한강으로 추정된다.

불교포커스 2007년  '봉은사 일주문을 기다리며'라는 기사에  봉은사를 소개하면서 일주문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멀리 도봉산이 보이고'라고 하길래 눈길을 주었는데, 아뿔사 도봉산이 아니다.

일주문 사이의 저 산은 강남, 잠실쪽에서 바라보이는 북한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인수봉이 마치 소뿔처럼 앞서 있고, 백운대와 만경대에 이어 주 능선이 유연하게 이어져 있다. 한편 도봉산 선인봉은 조금 더 동쪽으로 돌아앉아 있어 이쪽에서는 이채로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1960년대 초 압구정 나룻배에서 저멀리 보이는 산이 똑같은 모습인데, 북한산이다. 그때는 등산이 그리 인기있는 종목이 아닌지라, 이 젊은 친구들은 그러나 저멀리 우뚝선 북한산을 서울의 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리 큰 감동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은 2005년 이렇게 기사를 써고 있다. '최초 공개'이며 '1952년 가을 고 임인식 선생이 촬영한 것'이라고 부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진의 원 소장자부터 저 아득한 산이 도봉산으로 알고 있어서 벌어진 사단으로 보인다.

미있는 것은 봉은사는 경기고등학교가 있는 수도산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즉 어떤 경우에도 수도산 자락에 가리어 절대로 수도산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누구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봉은사측은 당시 왜 이 부분을 정정하려 하지 않았을까?

경기고등학교로 넘어가는 도로로 잘리기 전에 수도산 자락은 오르쪽으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지금 빨간 표시로 된 부분이 '진여문'이고 봉은사측에 따르면 이곳에 일주문이 있었다고 하니 더이상의 해명은 불필요할 것이다.

봉은사 위쪽에 높이 솟아 있는 봉은 배수지 공원에서는 이렇게 북한산과 도봉산이 잘 보인다.  도봉산은 좀 산세가 밋밋하다.

 

이렇게 해서 결국 봉은사가 아니라 '산'이야기를 한 셈인데,  이참에 봉은사의 '가까운' 과거를 조금 더 살표보자. 일제때부터 봉은사는 서울 근교의 유명한 위락지인 뚝섬과 함께 유명했다.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와야 하는데, 그때 맞닥뜨린 풍경은 이러하다.

                                              *출처: 에드워드 김 사진집

195,60년대 뚝섬에서 봉은사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넓은 백사장에 미루나무가 한가롭다.

                                               *출처: 봉은사( 봉은사 간)

봉은사 일주문은 이렇다. 지금은 평토되어서 봉은사가 평평하지만 저시절은 오르막임을 알게 된다.

                                                     출처

1950년대 또다른 봉은사 일주문 사진. 제법 가팔라 보인다. 

1960년대 초 소풍으로 찾은 봉은사 모습. 대웅전이 지금과 비할 바 못된다. 계단 중간에 구멍 두개 뚫린 바위가 눈길을 끈다. 지금도 있으려나.

 

덧붙여 1) 일제하 배타고 15분 가면 된다는 봉은사 이야기는 --> 여기를

덧붙여 2) 1950년대 봉은사 물(?)이 좋았던 시절 이야기 한편을 보자.

1958년 12.10 동아일보 '계절의 풍속도(35)- 거리의 대화 중에서

(종로에서)

- 아무데구 지숙씨 좋으신데루 하십시오.

   우이동두 좋구 봉은사두 좋구 뭣하면 가까운 정릉도 좋구요.

몇번씩은 다 가본 터라 지리가 훤하다. 정릉은 어느집, 봉은사는 파랑대문집, 우이동은 또 어느 산장을 찾아가서 눈짓만 하면 척척 마련이 되도록 되어 있던 것이다.

- 뭐 뭔데까지 가실 것 없잖아요. 정능 같으면 가도 좋아요.....

종로에서 남자가 은밀한 의도로 드라이버할 장소로 정릉과 봉은사 그리고 우이동이 거론된다.

그렇다면 이 세군데 중에 물(?)은 어디가 좋을까. 같은 연재물 1959년 3월 5일자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난 정능은 너무 살풍경해서 좋아하지 않지만.....

-하긴 조용하긴 역시 우이동이 조용해요. 새소리두 듣구, 물소리두 듣구.

정 정릉이 살풍경해서 싫으시다면 우이동이나 봉은사 같은데루 가십시다 뭐.

정릉이 서울에서 가깝다보니 물이 더 빨리 흐려졌을 것 같다.

 

다시 산^^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맨 처음  1952년 찍은 멋있는 일주문은 어느 사찰의 것인지 다시 궁금해진다. 이 앵글의 라인을 따라 일주문이 들어 섰을만한 고찰이 어디에 있었을까를 되짚어가면, 답이 나옴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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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블록(maybugs) 2019-05-15 09:57:51

    마지막 사진 일주문에 보이는 산세가 위의 사진에 있는 북한산의
    산세네요. 봉은사가 저런 시절이 있었다니 신기합니다.
    일주문을 그대로 남겨 뒀더라면 얼마나 귀한 보물이 되었을까요.   삭제

    • 바라보기(qkfkqhrl) 2019-05-15 09:55:05

      통기둥에 올려지고 네귀를 받쳐 올린 기둥이 또한 이색적이군요. 일주문이 문답게 보여 지는 것은 왜일까요.
      북한산 표기가 맞는지에 대해서 얘기 하고 싶구요
      삼각산이 맞다고 하던데 북한산은 일본식 표기라고 해야 한다고 ...
      표기에 대한 이야기함 부탁합니다.ㅎㅎ
      봉은사의 일주문에서 바라본 도봉산(?) 이런 그때도 기래기가 있었네요.
      실수겠지요. (기래기는 죄송합니다. 산이야기에 중요한 분이신것 같은데)
      추천 후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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