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 보니 5월이다.

그간 정신을 놓고 살았던 건 아닌데

요 며칠 달력 볼 때마다 문득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시일이 이렇게 되었구나.'

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평상복 차림새도 그새 많이 가벼워졌다.

낮에는 덥다고 느낀다.

산책이나 운동을 나가면 땀을 꽤 쏟는다.

연초까지 선연하던 기억이나 마음들도

한결 희미해졌다.

그 위로 새로운 기억과 마음들이 덧칠되어 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생의 캔버스도 팔레트도

그 모양을 많이 바꾸었다.

캔버스에 새파란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여름이구나.

내가 그린 것인데 한 번씩 남이 그린 것처럼 느껴지는 그림.

또 한 세월을 살았구나, 라는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이 여러 가지 감상을 일으킨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틈틈이 보며 지낸 5개월이었다.

유통기한 지난 것들을 냉장고에 계속 보관하듯

마음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의 많은 부분을 처분하는 5개월이기도 했다. 

가볍고 평안하다.

그렇게 되고 나니 좋은 것들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보인다.

틈을 내니 좋은 것들이 그리로 고인다.

좋은 것들을 억지로 내 안에 들이려 애쓰며 살았는데.

나무 위에 나무를 심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빈 땅에 나무를 심어야지. 

정말 고마운 반 년(아직 반 년이 다 차지 않았지만)이다.

작년에 어질러진 것들 거의 대부분이

5개월 사이에 반듯하게 정돈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감사하다. 

감정도 습관인데

몇 달 간 그 습관의 많은 부분이 변화된 것 같다.

감정 습관이 바뀌니 말투나 표정 같은 것들도 더불어 변화된다.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들이 이토록 많았구나 생각한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