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신 배우 '김혜자'

백상예술대상시상식에서 배우 '김혜자'선생님의 수상소감은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일부이자 전부였을 줄 모른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뼈를 때리는 진한 울림이었다.

그녀는 수상소감을 위해 '눈이부시게'의 드라마 대본을 찢어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찢어온 대본으로 여러사람들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거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자격이 있었음에도 혼자 자격없다고 단정지으며 놓쳐버린 것 때문에 이 말로 인해 마음이 파열되기 시작했다.

'가짜'를 '진짜'같이 연기를 잘하는 것이 배우인 게 맞지만, 왠지 김혜자라는 배우는 가짜도 진짜로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리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최고의 배우같다.

평범하다고 하면 다들 특별함에 미치지 않는 하찮음으로 생각할 줄 모르겠지만 '평범함'은 그리 쉽게 누려지는 게 아니라는 걸 삶의 물결속에서 경험해 왔다.

그녀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건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고, 죽음도 당연히 내게 오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맞이하겠다고 말하며 다소곳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 생각난다.

열심히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 늙는 게 슬프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저 나이에도 소녀같은 수줍음을 간직한 그녀가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답게 느껴진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그 어느 누구의 수상소감보다 빛나고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녀는 또 수줍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인사를 하며 무대를 내려간다.

왠지 마을 어귀 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수선화가 핀 것같은 모습으로 단아하게 앉아있는 인자한 이모의 미소처럼 닮아있다.

아직 그녀의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배우가 없다고 생각될 만큼 그녀는 독보적인 존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