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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이 있는 곳은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각 정도 걸어서 도성 근처로 가자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명령이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상황은 엉망이었다.

하르가치는 얼굴을 찡그렸다.

장수들이 명을 이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곧 그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그의 눈에 부하들읕 통제하려고 하는 장수들과 이목을 피해 약탈행위를 하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소규모의 부대가 워낙 넓은 지역을 장악하려다 보니 통제가 잘 되지 않고 있었다.

전쟁 중에 사기를 위해 약속한 것인지라 장수들도 쉽게 통제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위에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다른 부대의 일에 나서는 것은 명령계통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하였으므로 참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하르가치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황제의 영이 떨어졌다는 점도 그런 결정을 영향을 주었다.

싫던 좋던 부친의 나라였다.

이각 정도 걷던 그는 약탈이 끝난 큰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엉망이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피난을 갔는지 아무도 없었고, 하인으로 보이는 자들의 주검만 보였다.

죽은 지 몇 일이 지났는지 고약한 냄새가 코를 진동시켰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 읽을만한 것이 있는지 찾았다.

이런 커다란 집이 아니면 그런 것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은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책이 있을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그런 곳들을 뒤지며 읽을만한 것들이 있는지 살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지만, 하르가치에게 책자는 그 어떤 보물보다도 가치있는 것이었다.

족장이 심적 제어력을 기르기 위해 안배한 것이 하르가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셈이었다.

실제로 족장은 그가 학문에 심취하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여진족이 문보다는 무를 더 숭상하였기 때문이었다.

전사로 자랄 인재가 학문에 빠진다는 것을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고, 눈치가 빠른 하르가치는 그 사실을 빨리 깨닫고. 학문적 욕구를 제어하였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그 욕구를 억제할 필요가 없을 때에는 굳이 그 욕구를 누르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할 일을 잘 한다면 그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서삼경 등 자신이 이미 읽은 것들은 필요가 없었으므로 제자리에 두었고,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것들을 중점적으로 챙겼다.

다행스럽게도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책자들이 많이 있었다.

규방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불경으로 보이는 것과 뭔지 알 수 없는 것들을 찾았다.

창고로 보이는 곳에서 지게를 찾은 그는 챙긴 책들을 손쉽게 가져갈 수 있었다.

밖에 나갔던 그가 함을 들고 오자, 호기심을 보이던 부하들은 가져온 것이 책이란 것을 알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였다.

고개를 돌려 한심하다는 표정을 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르가치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와 함께 전투에 참가했던 소수의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하였다.

그는 밤이 오기 전에 가지고 책 중에서 몇 가지를 보았다.

비록 사서삼경 등 기초적인 공부를 하였지만, 보기에 어려운 책들이 제법 많아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날 그가 본 것은 훈민정음이라는 조선의 글자로 만들어진 글이었다.

간자 교육을 받았던 그는 이미 오래전에 그 글을 익혀 두었으므로 그런 글들을 읽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배우기가 어렵지 않아 불과 삼개월만에 익힐 수가 있었다.

그 중에서 불경으로 생각한 제법 오래된 책의 뒷부분에 숨겨져 있던 설공찬전이라는 글은 그동안 본 적이 없던 아주 기묘한 글이었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저녁을 먹고 나서, 부대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확인한 하르가치는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숙소로 돌아와 다시 책을 읽었다.

자유투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