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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임무상 많은 짐을 가지고 움직일 수가 없었으므로 이미 읽은 것과 불경처럼 읽기가 어려운 것들을 불에 던져 넣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형편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남긴 것은 가지고 다녀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세 권의 병법서였다.

조선왕의 항복은 받은 청군은 곧 조선에서 물러났다.

하르가치는 제일 뒤에서 철수하면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임무를 맡았다.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르가치는 묘향산이라 불리는 제법 높은 산의 한 지역을 부하들과 함께 가던 중이었다.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이었고, 주위에 아무런 위험도 없었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르가치의 마음은 가볍지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찹찹한 마음이 들었다.

지도층이야 당연히 당해야 할 일을 당한 것이므로 그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도성의 근처에서 본 것처럼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가던 하르가치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그렇게 넓지 못하였다.

제일 앞서 가던 그는 손을 들어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모두들 그 자리에 멈추었다.

하르가치는 주위를 살피며 이상한 점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였다.

바로 뒤에 있던 부하가 다가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 대장님 ”

“ 뭔가 이상한데, 느낌이 좋지 않아. ”

앞을 살펴 본 부하가 말하였다.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얼굴을 찡그린 하르가치가 고개를 돌려 부하를 쳐다보며 명령하였다.

“ 앞서 가서 뭐가 있는지 살펴 보겠다. 별 문제가 없으면 신호를 보낼 것이다. ”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가치는 조심스럽게 앞쪽으로 나아갔다.

그의 모습은 곧 안개속으로 들어가 부하의 눈에서 사라졌다.

부하의 눈에는 마치 안개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신호를 기다렸다.

안개속으로 들어간 하르가치는 뭔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끈적거리는 것이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괴상한 느낌이었다.

‘ 이상하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

꼭 처음 와 본 길을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과거 그가 직접 답사를 한 길이었다.

주위를 살피면서 일각 정도 들어간 그는 안개속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지만,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지역이 아니었다.

하르가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약 백장 정도의 공터가 있었고, 그곳에는 움막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고개를 갸웃한 그는 움막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 부하들을 불러? ’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적어도 탈출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안개가 펼쳐진 곳까지 뛰어 가기만 해도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움막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지만,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칼을 꺼낸 그는 문이 있는 곳을 찾아 조심스럽게 움막을 끼고 돌았다.

천천히 움직이던 그의 눈앞에 한 노인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편평한 바위에 앉아 있었다.

하르가치는 칼을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돌아 노인의 앞쪽으로 움직이면서 노인의 모습을 살폈다.

백발노인은 눈을 감고 있었다.

인자한 미소를 지은 모습의 노인은 햇빛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별다른 기를 느끼지 못한 하르가치는 노인의 오수(낮잠)를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였고, 그 순간 노인이 눈을 떴다.

자유투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