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심(復讐心)’이라는 단어가 별안간 떠올랐다. 얼마 전에 본 영화에서 극중 인물들이 복수라는 단어를 많이 말해서 그런가 보았다. 복수심은 어딘가에 복수하려고 속으로 준비를 하고 기회를 노리는 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 단어는 내 생활과 전혀 상관이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내 쪽에 피해가 생겨도, 복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내가 늘 이렇게 살아온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내가 굳게 가지고 있던 신조 하나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만일 해를 입었다면, 해를 입은 만큼 가해자에게 앙갚음을 한다. 그때는 이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복수(復讐)는 ‘갚을 복復’과 ‘원수 수讐’가 만나 이룬 단어다. 원수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대상’을 의미하고, 갚음은 ‘남에게 빌리거나 꾼 것을 도로 돌려줌’을 의미한다. 하여 복수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그 해를 되돌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과거의 나는 조금의 피해도 그냥 봐 넘기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날 때 나는 그 사람과 끝없이 싸워야 했다. 사람이 모여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피해가 생기게 마련인데, 그런 순간마다 누구랄 것 없이 눈에 불을 켜고 앙갚음을 했으니. 결국 처음에 생긴 피해는 피해도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 몸을 움직이던 상대가 얼떨결에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살짝 친 것 때문에 서로 뼈가 다 부러지도록 싸운 꼴이라고 할까.

   ‘원수는 순(順)으로 풀라.’라는 속담이 있다. 원수는 순리로 풀라. 내가 원수에게 복수하면 원수가 나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어 서로 끝없는 원수가 되니, 원수는 순리로 풀어야 뒷일의 근심이 없다. 그럴듯하게 들리긴 한데, 이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리(順理)는 ‘순한 이치나 도리’,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을 의미한다. 순하다는 것은 ‘유순하다, 순응하다, 온화하다, 바르다, 도리를 따르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치는 ‘사물의 정당한 체계’를 의미하고, 도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의미한다.

   이 의미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전까지, 나는 ‘순리를 따른다.’는 게 ‘그저 순응한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수를 순리로 풀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것 같다. ‘피해 입었을 때 복수 안 하는 건 둘째 치고, 내 쪽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원수를 순리로 풀라.’는 말이 ‘원한을 올바르게 풀라.’는 말로 들린다. 손 놓고 가만있지 말고, 일어난 일을 정당하게 해결하라.

   이 속담을 만든 사람은 복수하는 게 원한을 올바르게 푸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금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엄청난 번식력으로. 까딱하다가는 인생이 통째로 잠겨 버릴 만큼.

   복수심을 해소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복수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복수심을 다른 마음으로 바꾸는 것. 예를 들면 이해심 같은 것으로.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저 그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고, 순간적으로 분노한 나 자신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뭘 이해해서든 일단 내 마음이 달래어지고 나면, 복수보다 건강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사실 나는 대단한 이해심을 가지고 복수하는 생활을 청산하지 않았다. 내가 내 복수의 사슬을 끊은 이유는 한 가지다.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건가……. 내가 내 인생은 못 살고, 이러다 죽도 밥도 안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뭘 위해 살고 있는지 까마득했다. 싸울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살아가는 변태가 된 것도 같았다.

   내가 너무 너덜너덜해져 있다는 걸 발견한 것도 충격이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아파 죽는 예민한 사람이 되어서, 밤에는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었다. 몸이 너무 많이 상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은 타인이었겠지만, 복수하는 생활을 지속한 건 순전히 나 자신이었으므로, 결국 나를 이렇게 망가뜨린 것은 나였다.

   지금은 어떤 문제가 생겨 내 쪽에 피해가 생겼을 때, 사람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그게 급한 게 아니니까. 그것보다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생각하고, 나의 안전과 안녕을 꼼꼼하게 살핀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그건 그거대로 두고,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대처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대부분의 사고가 사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구나. 예전에는 일을 저질러 놓고 억울해하는 사람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절대 이해 못할 줄 알았던 것들을 하나씩 이해해 나갈 때, 가장 먼저 행복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나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