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살이 된 사촌동생이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 줬다. 다빈.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었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 주는 이름은, 그래, 이렇게 달콤한 거였지. 내 이름 그리고 내 이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새삼스럽게 아름다웠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봄꽃이 만발한 산책길을 걷는 중에 벌어진 일이다.

   그 애의 세상에 나라는 사람이 비로소 어떤 형체를 가진 것 같아서, 마음이 감동으로 물결쳤다. 그 감동의 여운은 꽤 길게 이어졌다.

   감동(感動)은 무언가를 크고 깊게 느낀 나머지 마음이 움직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마음이 움직인다. 어느 때는 기쁨 쪽으로. 어느 때는 행복 쪽으로. 어느 때는 즐거움 쪽으로. 어느 때는 고마움 쪽으로. 어느 때는 사랑 쪽으로. 어느 때는 보람 쪽으로. 어느 때는 해방감 쪽으로. 어느 때는 안도감 쪽으로…….

   감동은 마음이 하는 여행 같다.

   평상시에 마음은 평상심이라는 자리에 머물러 있다. 거기가 마음의 집인 것이다. 그러다가 마음은 어떤 멋진 순간을 만나 어느 곳으로 간다. 그곳으로 가서 한동안 머무른다. 그런 후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감동이 끝난 것이다.

   마음은 언제나 평상심으로 돌아온다. 여행을 마친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런데 그러한 귀환은 과거로의 귀환이 아니다. 감동의 순간 자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이 남는다. 경험에 대한 기억이.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을 안고 돌아온다. 비록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왔지만, 출발하기 전의 우리와 도착한 우리는 엄연히 다른 사람들이다. 마음도 그렇다. 마음도 경험에 대한 기억을 안고 돌아온다.

   좋은 기억은 분명한 위력을 지닌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을 강하게 하는. 좋은 기억이 마음의 근력을 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그랬다. 내가 감동한 순간들이 결국에는 내 마음의 힘을 키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감동시키는 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도 좋고, 그것들이 모여 나를 딴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굳건할수록 내 인생도 굳건해진다. 하여 행복은 나에게 너무나도 실질적인 행위다. 내가 감동하는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내 인생을 보다 잘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내가 내 기능적인 부분들을 단련하는 것도 물론 나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근본적인 내 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나를 가장 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좋은 영화, 좋은 음악, 좋은 여행, 좋은 독서, 좋은 관계, 좋은 취미를 접하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일상 밖의 일이 아니다. 그것들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일상과 밀접한 일이다.

   감동은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고, 사실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이다. 누가 감동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그 사람에게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어떤 일이 나를 감동시킨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그 일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움직여서.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 내 마음의 문이 열려 있어서.

   마음의 문이 열려 있어야, 마음이 여행을 갈 수 있다. 내가 감동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감동하는 인생의 원인도 내 안에 있고, 무감동한 인생의 원인도 내 안에 있다.

   오늘날 내 마음은 얼마나의 문을 열고 살아가는지 한번 돌아본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