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얻어 온 옷이 나에게 새 구두를 하사하다.

어릴 적 자식이 넷이나 되는 우리 엄마는 나에게 동네 언니ㆍ오빠들이 입다 작아지거나 못 입는 옷을 가져다 입혔다. 근데 난 그게 너무 싫었다.

옷이 큰데도 바짓단을 돌돌 말아 입어야 하고, 허리가 헐렁해도 수선해 주는 게 아니라

옷핀으로 조절해서 입어야 했고, 크다고 해도 엄마는 내후년까지 입으려면 천 잘라내지 않고 이렇게 입으라는 말만 던져 주었다.

''또 바지단도 네가 더 크면 한단 더 내리면 되고 또 크면 한단 더 내리면 돼!''

그렇게 나의 부정과 거부의사를 철저하게 방어하셨다.

그보다 더 싫은 건 내 자존심이 손상되는 거였다.

입고 나갔는데 그 옷의 주인을 만나면 '내 옷이었는데~' 한다거나 아주머니가 내가 입은 모습을 보고

'아이고!!니가 입으니까 딱 됐다!' 이런 말들로 어린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친언니가 입던 옷 물려 입는 것도 억울하고 서글픈데,이제 동네 언니 오빠 옷까지 갖다 입히는 엄마가 너무 야속했다.

거기다 밝은 옷들은 때가 묻으면 금새 더러워진다고, 오래 못입고 버리게 된다고 때 묻어도 티나지 않는 어두운 색만을 고집하는 엄마의 원칙에 의거하여 내 옷은 내 마음만큼이나 어두웠다.

검은색은 기본이고, 쑥색, 잿빛 회색, 전부 바지뿐이었다.

공주같은 치마나 하늘하늘 원피스 같은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매일같이 밤낮으로 일하러 다니다보니 자식들 일일이 신경 써주지 못하는 엄마의 조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어린 나이에 그걸 알았다고 해도 엄마가 미웠을 것이다.

나는 남자아이들이랑 구슬치기,딱지치기,동전치기,자치기를 하며 노는 게 재미있었다.

그게 신나기도 했고 내 행상이 남자애들에게 딱 맞는 복장이고 비교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신발이 자주 헤지고, 밑창이 떨어져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기집년이 맨날 사내들 하는 놀이만 하니 신발이 떨어지는거라고 나무라더니 세상에~ 다음날 시장에서 고무신을 사오신 것이다.

엄마는 이거 신으면 밑창 떨어질리도 없고,질겨 오래 신을거라고 내 앞에 내놓으셨다.

그때 나는 속으로 우리 엄마는 계모일거라고 내게 계속 주입시키며 이 현실을 부정하려 몸부림쳤다.

그날 밤,나는 그 흉칫한 물건을 가지고 뒷마당에 가서 칼로 고무신을 갈기갈기 베어버렸다.

그 후 나는 교실에서만 신는 실내화를 신고 학교를 다녔다. 국민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점점 엄마가 얻어오는 옷을 입기 싫었다. 거지취급받는 것 같았다.

나는 얻어 온 옷을 입지 않고 계속 체육복만 입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오일장에 가자는 것이다.

안간다고 버텼다.내가 완강하게 버티는 데에는 고무신의 행방 때문이었다.

실내화를 신고 나가면 고무신의 행방을 물어볼거고 그럼 나는 고무신을 토막 살해했다고 이실직고 말하거나 잊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반강제적으로 나를 일으켜 세웠고 어쩔 수 없이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실내화를 신고 두세 번 올린 바지단을 최대한 내려 신발이 보이지 않게 하여 엄마를 따라 나섰다.

엄마는 항상 시장에 가면 딱딱 살 것만 사는 스타일로 여기저기 구경하면 돈만 빠져 나간다고 요즘 같이 눈팅의 즐거움도 모르는 분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신발가게에서 구두의 가격을 물어보는 것이다.그것도 여자아이의 구두를 가리키면서 말이다.

그토록 신어보고 싶었던 공주같은 빨간 리본달린 구두를,

아주머니가 누가 신을 거냐고 묻자 엄마는 나를 가리키며 ''얘가 신을건데~한 치수 큰거로 주세요''하시는 것이다.

''구두는 사이즈 크면 자꾸 벗겨져서 안돼요. 딱 맞게 신어야 돼요.''

엄마는 아주머니 말에 수긍하며 맞는 신발을 달라고 하셨다.

나는 아주머니가 내미는 신발을 받자마자

내가 왜 내렸는지도 모를 바지단을 얼릉 걷어올려 구두를 신으며 ''맞아요!맞아요!를 연거푸 외쳤다.

엄마 맘이 바뀌어도 안 벗을거라는 다부진 몸짓을 했다.

엄마가 아주머니와 가격흥정을 하던 말던 나는 너무 신났다.

그리고 엄마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아주머니랑 가격흥정에 실패하여 비싸다고 벗으라 할까봐서 조마조마해서다.

그러나 다행히도 계산이 끝나고 엄마가 내게 가까이 왔다.

그렇게 오기싫은 발걸음이었는데 나는 그순간 날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엄마는 집에 가서 엄마가 사주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얻어줬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너무 새신발이라 의심할테니까 ㅇㅇ아주머니가 샀는데 너무 작아서 너 준거라고 말을 맞추자고 하셨다.

다른 자식에게 미안했을 엄마의 마음이었다.

까짓껏 그런 거짓말 열 번이라도 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혹시나 고무신의 죽음을 알고있나 싶어 은근히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엄마를 떠보면서 왜 갑자기 신발을 사주냐고 물었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ㅇㅇ댁이 딸이 입었던 원피스 두장을 너 입히라고 가져 왔는데 너무 이쁘대. 내 딸 이런 원피스 입으면 이쁠텐데ᆢ''

맨날 바지단 동동 걷어입는 딸이 마냥 맘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때 엄마는 말했다.

딸이 원피스를 입은 모습을 상상하다가 저 원피스에 고무신을 신은 걸 떠올리니, 그게 영 아니라는 생각에 그 원피스를 그냥 딴 사람 주라고 돌려 보내려고 하니 너무 탐나고,딸 입히자니 신발꼬라지가 걸리고

그래서 갈등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에이 이참에 구두하나 사주자 맘 먹은 것이란다.

엄마는 내가 고무신이 창피해서 실내화 신고 다닌다고 여기신 것 같았다.

맨날 남에게 얻어 입는 옷이 내 자존심을 거지처럼 짓밟더니 이렇게 빨간리본구두를 내게 선사할 줄이야!

우리 엄마의 주머니를 열어 내게 구두를 사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 나는 여자아이들이랑 구두 상하지 않게 공기놀이만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하늘색 원피스와 핑크색 원피스가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내게 구두를 하사하신 존재이기때문이다. 헌 옷이 새 구두를 물고 온 것이다.

그때 나는 남이 입던 원피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않고 그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그 옷과 구두를 신은 나는 완전 세일러문이 되었다.

작아서 못 입게 된 그 원피스는 내게 천사처럼 왔다. 새 구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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