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이 많이 남을 때 당신이라면?

아침부터 서둘러 나오다보니 약속시간까지 1시간 가량이나 남았다.

약속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랑 있는데 같이 있어도 된다고 그 쪽으로 오라는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한 후 보기로 한 시간에 만나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카톡으로 '괜찮은데 와!'하고 문자를 남겼다.

나는 '나도 괜찮아'하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지난 추억을 하나 낚아 올렸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술 마시는 문화에 흠뻑 젖어 벅적거리게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하던 무렵이었다.

퇴근무렵 갑자기 친구가 전화가 왔다.

퇴근하고 술한잔하자는 것이다.

난 당연히 ''누구누구 와?''하고 물었다.

이 친구와 친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친했다.

친한 친구의 친구로 알게되어 근 1~2년을 알고 지낸 사이다.

그런데 항상 친구들 무리속에서만 지냈던 터라

단둘이 차를 마신다거나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나온 말이었다.

''야! 우리 둘이 마시면 안되냐?''

서운함이 잔뜩 묻은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 그건 아니고~~알았어. 갈게''

하고 친구가 불러주는 약속장소로 갔다.

그곳은 내가 자주 가는 민속주점이었다.

약간 초가집같은 토속적인 인테리어와 창호지로 빛을 한 번 희석시킨 조명이 잡티를 커버해주는 그

그런 곳이었다.

친구들은 이 조명아래 있으면 다 왕조현처럼 보인다고 했다.

퇴근하고 바로 갔으니 술집 분위기상 이른 시간이었다.

7시나 넘어야 자리도 채워지고 북적거릴 것이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소리가 적어서인지 아직까지 술집 분위기보다 카페 분위기에 가까웠다.

입구문을 열고 들어가자 위에 매달려있는 방울이 요란하게 울리고 손님이나 종업원이 일제히 시선을 준다. 물론 내부가 시끄러우며 그 방울소리도 묻혀 버리겠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다행히 한 눈에 친구와 나는 눈이 마추쳤고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가며 친구 앞에 또다른 동행자가 있다는 걸 감지했다.

나는 친구 옆에 앉으며 그 남자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그 남자는 친구의 회사 동료였다.

'도대체 이 사람을 왜 데리고 온거야. 불편하게'

속으로 생각만 했다.

친구는 동료에게 날 소개했다.

예의상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를 주고 받았다.

난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어색한 자리를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이 친구도 그걸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난 이 친구와 단 둘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새삼스럽게 둘 만의 여백이 느껴졌다. 거기다 귀뜸도 없이 낯선이와 합석까지 이루어졌다.물론 귀뜸했으면 이 자리에 절대 오지 않았을 나였다.

내 의사에 반하는 짓을 친구가 만든 것이다.

어느 날 퇴근 길에 친구에게 전할 물건이 있어 그녀의 사무실에 들린 적이 있었다. 그때 잠깐 날 본적이 있다고 남자는 말한다.

그러나 나는 기억에 없다. 사람을 유심하게 보지 않는 성격탓도 있지만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사람을 기억할 리 만무하다.

그는 근처에 약속이 있고, 약속시간이 많이 남은 관계로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다. 뭐 초면도 아니니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약속시간까지 남은 빈 시간을 잘 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무실에 있다가는 괜히 이일 저일 더 맡게 될까봐 약속있다고 나와 버렸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비더라는 것이다.

혼자 있기 벌쭘해서, 친구가 괜찮다해서, 따라 왔다는 것이다.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나는 못할 행동이었다. 다른 사람의 약속자리에 끼는 행동같은 건 나라면 안했을 것이다.

이 공간은 내가 나에게 취해도 되는 공간으로 허용한 곳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나는 술이 내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는 걸 한 모금 딱 입에 대는 순간 감지했다.

아~오늘은 술이 받지 않겠구나!

술은 편한 사람하고만 마신다. 그래야 입안에 착 감기면서 목구멍을 매끄럽게 넘어간다.

그와 합석한 자리가 불편하기도 했고, 세 명이서 공감되는 이야기도 크게 없는데서 오는 틈과 어색함을 메우기위해 서로가 감정소비를 하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그런 경험을 맛 본 내가 남의 약속공간에 침입하기보다 어색한 메움을 감수하지않고 차라리 혼자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거나 서점에서 책을 고르며 기다리는 것이 훨 편하다는 걸 안다.

'나도 괜찮아'란 문자는 예의상이 아닌 진짜 괜찮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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