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언양휴게소

난 결혼전 유난히 감성적인 소유자였다.

분위기있는 커피솝에 앉아 감성에 푹 빠져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커피향이 몸에 스며들 수 있게 나를 놓아두는 것에 시간투자를 많이 했다.

분위기에 취해 마시는 커피는 내게 너무 이상적인 쾌락이다.

나는 분위기 80%로 커피를 마신다.

그만큼 분위기에 빠져 마음에 감성으로 기름칠을 한다.

기분이 나쁘다가도 분위기있는 카페에서 커피향만 느끼면 금새 좋아진다.

참 단순한 종자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휴게소에 대한 나만의 강한 메시지가 있다

내 기억으로는 결혼 후 2번째 맞는 추석명절 연휴였던 것 같다.

난 그때 육아로도 너무 지쳐 있었고, 명절이면 어머니랑 장보는거로 실랑이를 벌이느라 감정들이 뽀족하게 삐져나와 있었다.

친정이 멀어 명절에 가지도 못하는 신세, 하루 자고 오자고 그 비싼 비행기표를 끊을 수도 없고, 맏며느리로 시댁일 나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친정간다 채비하는 동서를 보며 설움 한 바가지 가슴에 퍼담는데 눈치 없는 남편은 모임에 간다고 나가고, 어린 아이 등에 업고 집에 오니 이 무슨 명절이 이 따위야! 물밀듯이 드는 서글픔!

왜 결혼을 한다가 아니라 시집을 간다는 말인지 실감났다. 그래 난 시집을 온거야.

평생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시아버님의 제삿상을 차리고, 시집 친척들을 맞이하여 열심히 상을 차리다 명절을 부엌떼기로 일만 하다 끝났다.

이제 나는 명절때 친정은 꿈도 못꾸는 삶을 살아야하는 거구나!

몸에선 기름냄새, 음식냄새가 향기라고 풍기는데 앞으로 분위기로 커피마시는 나는 죽었구나.

끝났구나! 생각하니 결혼이 개떡같은 거구나,

사랑이 지랄맞은 거구나!

검은 마음들이 쏟아졌다.

부산에 있는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신세한탄을 늘어놓고 언니는 또 그걸 다 받아주었다.

그것도 길게 할 수 없어 전화를 끊고나니 더 허망했다.

밤이 되고 가족들이 다 잠든 시간,아마 12시가 되었나? 집앞에 차 한 대가 세워졌다.

노크소리에 나가보니 언니였다.

고향 갔다오는 길이라 늦었다고 나보고 나오라는 것이다.

아이는 자고 있고 깬다해도 애아빠가 있으니 걱정없다 여기고 그냥 걸친 옷 그대로 차에 탔다.

그냥 내 전화받고 맘에 걸렸구나 싶었다.

고향 갔다오느라 피곤할텐데 이시간에 뭐하러 왔냐고 말을 꺼내놓았다. 참 따뜻하고 정 많은 언니였다.

"그러니까 누가 물 건너 시집오래? 일단 떠나자. 행선지 정하지 않고 발길닿는대로 ~"

그렇게 차를 몰아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언양휴게소!

휴게소는 영업이 끝난 터라 가게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언니는 자판기커피를 두 잔 빼오더니 차에 탔다.

차안에는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휴게소에서 나오는 불빛 빼고는 사방이 까맸다.

"난 있잖아. 가끔 여행을 가고 싶거나 친정엄마가 보고 싶을 때 여건은 안되고, 맘은 넘치고 그러면 이렇게 휴게소에 와서 자판기 커피 뽑아 마시고 차 세워두고 음악 들으면서 난 지금 여행가는 중에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난 엄마를 보러가는 중이다. 졸음운전할까봐 휴게소에 들렀다. 커피로 잠을 깨우려는 중이다.하면서 세뇌시키는거지! 반은 기분이 나, 그럼 우울한 기분이 반은 접혀.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가.

결혼하면 안 외로울 것 같았는데 더 외로워져. 너도 앞으로 많이 느낄거야!"

언니는 친정에도 못가고, 육아,시집문제로 멘탈이 무너지는 나의 외로움같은 걸, 먼저 겪은 선배로서 내 기분을 달래주려고 한 것 같다. 갈 수 있는 곳이 휴게소뿐이라는 게 그때는 솔직히 더 서글펐고 언니처럼 불꺼진 휴게소에서 자판기커피를 마실 미래가 내게 오면 어쩌나 싶었다.

휴게소만 가면 언니 생각이 난다.

늦은 밤 휴게소 주차장 차안에서 마시던 자판기커피와 외로움이 묻어있는 언니의 말들이 쓸쓸한 영화명대사처럼 느껴졌던때,

명감독의 연출처럼 그 휴게소의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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