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캐비넛.

와이프랑 연애 첫 해에 제가 다녔던 대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저의 추억을 그녀와 공유하고 싶어 제가 자주 가던 도서관이며 통학 길 저만의 사색공간이었던 벤치등을 알려주고 싶어서요.

5월의 파란 하늘 아래 그녀의 손을 잡고 캠퍼스 안을 누비고 있으니 왠지 캠퍼스 커플이 된 듯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동기녀석들 이야기 하고 자주 먹었던 학식 이야기 하며 자연스럽게 추억을 공유 했습니다.

졸업한지 꽤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사용했던 캐비넛이 남아 있었습니다.

캐비넛 자물쇠 마저 그 시절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설마 설마'

'두 뚝뚝'

열립니다.

그녀가 전혀 볼 수 없었을 제 대학시절의 물품들이 퇴색되지 않은 채 그대로의 모습으로 저희를 마중 나왔습니다.

제 레포트와

제 노트

그리고

그 당시 썻던 전공서적과 다이어리까지..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미래가 된다.오늘은 내일의 과거이며 어제의 미래였다.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비장하게 쓰여진 다이어리의 글귀를 보니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전여친이자 현와이프는 빨강색 볼펜을 들고 '♥️' 그려줬습니다.

우리들만의 타임캡슐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오글거리는 글들을 서로에게 남기고 핸드폰으로 인증샷까지 찍고 매년 이곳에 우리를 기억을 남기자 하고 맹세를 하며 왔습니다.

약속이라는 것이 지켜지면 고마운 것이고..대부분 지켜지지 못해 기억속으로만 남겨진 것.

매년은 못 가봤습니다.

작년에 기회가 닿아 저 혼자 다녀왔습니다.

캐비넛 자체가 통으로 교체되었기때문에 제 껏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치우며 누군가 우리의 것을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 부끄럽습니다.

낯간지러운 말들이며 중2병 말기 환자 가까운 비장비 그득한 제 다이어리..하...

미니홈피에 쓰여질 만한 이야기들...

그래도 인증샷 찍어 와이프에게 보냈습니다.

와이프가 그나마 제가 썼던 레포트를 몰래 가져가 집에다 모셔 놓았다고 하네요.

하필 레포트인가요?가져갈 것이면 다이어리나..오글거리는 사랑의 글들을 가져오지..

와이프는 내 대학시절을 갖고 오고 싶었다고 하네요..

타임캡슐은 뜻하지 않게 와이프랑 저랑 아무런 연관점이 없던 시절을 나눌 수 있는 귀한

자료였습니다.

서로 몰랐던 과거를 이해 받으며 현재의 내 모습을 좀더 안아줄 수 있는 자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과거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런 힘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의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매개체가 되리라는 걸 저는 경험으로 얻었습니다.

애정하는 것일 수록 좀 더 역사와 과거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