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헤어진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이 꽤 오랫동안 내 안에 있었다. ‘뭐가 어찌 됐건, 그 사람 만나서 난 좋았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그 소망이 언제나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때는 그 관계가 서로에게 비슷한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우리가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람도 우리도 그 관계를 자기 마음대로 정의하기 때문에.

   정작 나 자신은 모든 사람들을 좋게 기억하지 않았으면서, 나만은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고 싶었다니, 허황된 욕심을 과하게도 부렸다 싶은데. 당시 나는 그 욕심 내지는 희망을 장기간 보유했다. 그래서 누군가와 헤어지고 한두 번은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잘 지내냐고 묻고, 잘 지내라고 했다. 돌아온 대답에 원망이 뒤섞여 있으면 사과를 했고, 돌아온 대답이 흔쾌하고 다정하면 안도했다.

   처음 그런 인사를 시작했을 때, 나는 다분히 전략적이었다. 진심은 많지 않았다. 내가 괜찮게 기억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그런 인사를 하면 할수록, 나는 더 큰 진심을 가지고 행동했다.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누군가를 나쁘게, 아프게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짐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이거나 말거나 이렇게 연락해서 관계 매듭을 단정하게 지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나는 몇 차례 들었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고맙다고. 너도 잘 지내길 바란다고. 나도 너한테 상처 준 게 분명 있을 텐데, 늦게나마 사과하고 싶다고. 미안하다고. 일방적으로 누가 잘못해서 헤어지는 관계가 어디 있냐고.

   누군가에게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건네는 동시에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나고 나서야 깨달아진 내 실수들에 대해 나는 뒤늦게나마 사과하고 싶었다. 그러는 게 올바른 일이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내 사과가 담긴 인사를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내 사과를 거절했다. 이제 와서 이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냐면서. 누군가는 나에게 뒤늦은 분노를 토해냈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했냐고. 진짜 맘 아프고 화났었다고.

   그러는 중에 알게 되었다. 내가 말이나 행동으로 준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지만, 내가 주지 않은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나로 인해 속상해하거나 불쾌함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 내 과거를 돌이켜보니, 나도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서 상처를 받으며 살아온 것 같았다.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건 없지만, 괜히 마음이 상해 버린 경우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처음에 나는 그런 경우들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의 바람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내가 그 상처에 대한 책임을 다 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다 지려니 내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바람에 따라 나를 고쳐 나가다 보니. 그땐 그게 내가 받아야 하는 벌인가 싶었다.

   그러다 마침내 체념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걸었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내가 내 안의 어떤 부분들을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예전 그 사람으로 계속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누군가의 기억을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진실이 기억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개인의 판단이 기억을 만드는 듯했다. 내 진짜 의도와 상관없이 내 의도를 ‘이렇다, 저렇다.’ 짐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을 내가 바꿀 수도 없었다. 모두에게 괜찮은 뒷모습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이 마저 부서져 내렸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는 내 모습이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오래도록 두렵게 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두려워할 일이 아니고, 내가 상관할 일도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하게 말해도 내 말을 꼬아서 듣는 사람이 있고, 내가 별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을 듣고도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다. 나라는 사람은 내 것이지만, 나에 대한 이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닌 데다가 내 실체와 일치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그때그때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면, 내 삶에 따르는 수식들에 무심해져도 되지 않을까. 그게 내 삶에 더 이로운 일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좋은 평판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되어 살고 싶다면.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