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 때 일입니다.

다른 날과는 달리 정상 퇴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아내와 같이 목욕을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갈 수 있는 목욕탕은 두 군데가 있는데 둘다 걸어서 30분 정도는 가야 합니다. 한 곳은 도심으로 걸어가야 하고, 그 날 가기로 한 곳은 강변을 따라 가면 되는 길이었습니다. 산책도 할겸 선택한 곳이었습니다.

날씨도 산책하기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비가 올락 말락, 설령 비가 오더라도 강변 벚꽃길을 따라가면 많이 오는 비가 아니면 비를 피하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벚꽃 나무가 오래 되어서 터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 사진은 한 달 전에 찍었는데 지금은 더 울창해져서 거의 완벽한 터널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내는 걷고, 저는 작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메이벅스 사진전에 출품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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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쯤 갔을 때 비가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더라도 신경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벚나무들이 막아줄테니..

그런데 빗방울이 굵어지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재촉해서 벚꽃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야외공연장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야외공연장이라고 해봐야 아주 작은 규모이긴 합니다.

야외공연장에서 비를 피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때까지는 비를 조금 맞기는 했지만 좋았습니다. 비를 맞는 것도 즐거웠다고 하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10분 쯤 지났을까 살짝 아랫배가 불편해졌습니다. 어차피 소나기이니 곧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리 심각한 상황한 아니었습니다. 다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 시간 10분 더..

이번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비는 굵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가려면 위 사진 철교 왼쪽 끝까지 가서 도로를 건너 공원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 빗속을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데(걸어가면 5분 정도는 걸리는 시간이라)

다급해졌던 상황이라 조금 망설이다가 자전거를 타고 밟았습니다. 금새 몸은 비에 홈싹 젖어버렸습니다. 철교 왼쪽 끝에 도착했을 때 신호등이 빨강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세달 정도 전에 설치한 신호등인데 (꼭 필요한 신호등인데) 그날은 이 놈의 신호등이 너무 야속했습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몸을 베베 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급함,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해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1분 만 참자. 여기서 실수하면 진짜 대형사고 된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저는 거의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거의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배탈이 난 경우가 아닌 한 한 고비를 넘기면 평온한 시간이 찾아옵니다. 어쨋든 결론은 해피엔딩입니다.

두번째 사진을 'photo'란에 올렸는데 댓글에 '메이블록'님이 소나기를 맞아서 기분이 좋았겠다는 글을 남겨 놓으셨더라구요. 그 날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이 글을 적었습니다.

어제부터 (지금은 새벽) 대구에도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마의 시작을 알리려는지 10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굵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 오는 밤, 너무나 행복한 시간입니다. 굿꿈하십시요.

알짬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