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지내? ......
몇 년이 지났을까? 아니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1년이 지났든, 10년이 지났든 ,20년이 지났든
나에게 넌 아주 먼 기억 속 친구로, 지금은 가깝지 않은,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은 존재, 아니 그냥 다 잊혀지고 지워진 존재야.
내 인생에서 후미진 구석으로 밀어 버린지 오래야.
곰팡이가 쓸었거나 먼지 입자들이 눌러붙어 흉칙한 덩어리로 뭉쳐 있을거야.
몇 년이 지났는지 손가락 꼽아보거나 연도를 헤아려보기도 귀찮다.
이 뜬끔없는 카톡을 보낸 너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지도 않을만큼 나는 모든 것이 정리가 다 되어버렸다.
그리고 스팸문자보다 더 아무렇지 않게 쳐다볼 뿐이다.
네가 나에게 어떤 호기심이 발동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이런 나의 감정을 안다면 네가 내게 이런 수고스러움을 행하지 않았을테지
나는 이제 20대의 내가 아냐. 물론 너도 20대의 네가 아니겠지.
간혹 그러더라. 결혼하고 자식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 더 이상의 손길이 필요치 않으면 갑자기 찾아드는 내부적 공허로 인해 아주 꽃다울 시기에 피던 친구들이 그리워진다고.
그래서 페이스북을 뒤지고, 동창회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지인의 지인의 꼬리를 물고 연락들을 취한다고,
그래, 그렇게 내게 오는 걸음이 반가워 어제 만난 것처럼 벽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내게도 분명히 있지.
하지만 너는 아냐.
'어떻게 그렇게 단칼에 잘라. 너와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 너는 펄쩍 뛰겠지.
그래도 아냐. 단호하게 너는 내게 그런 존재가 아냐.
나는 네가 날 찾아왔던 그 날이 선명해.
중학교 때 같은 학교도 아니었지. 같은 반도 아니었지. 그저 스쳐 지나면서 '같은 학년이구나' 하는 정도였지.
그저 얼굴 정도 아는 게 다였지. 너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네가 날 찾아 온거야. 친구하고 싶다고, 같은 반도 아니고 말 한번 나눈 적 없는데 말이야.
나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친구를 맺은 적이 없었어. 보통 같은 중학교를 나왔거나 친한 친구의 소개로 가까워 진다거나, 학교 모임으로 자연스럽게 친해지곤 했지.
그래, 학교이다 보니 아무래도 같은 반이거나 짝궁이거나 앞,옆, 뒤로 앉은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확률이 높았지.
또 팀을 이루거나, 같은 청소 구역이거나, 집이 같은 방향이거나, 다 그렇게 무언가가 있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지.
근데 너랑은 정말 어떤 연결고리도 없었어. 그냥 네가 찾아왔어.
외모로 봤을 때 너는 호감가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차거운 인상이었으니까.
당혹스러우면서도 '나 너랑 친구하고 싶다'고 찾아 올 수 있는 당당함이라 해야 하나, 그래 자기 주장이 있는 너의 성격이 부러웠다.
나는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설사 용기를 부린다 해도 그 주변 친구들을 활용했을거야.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근데 넌 단도직입적으로 날 찾아왔어.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지. 인상과는 달리 너는 따뜻함이 많았어.
그리고 헤아리기 힘든 부분도 있었어. 그건 네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생활로 어두운 구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한 번도 먼저 캐묻거나 그러지 않았어.
우리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졸업하고도 너는 내게 참 많은 편지들을 보냈어.
그리고 친구의 집들이 날 우리는 정말 몇 년 만에 만났어. 난 결혼을 했지.
칭얼대는 아이에게 모유를 먹여 재우기 위해 친구집 작은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재웠고, 아이를 재우다 보니 나도 깜박 잠이 들었어.
저녁을 먹자고 깨우려 들어왔던 네가 내가 자는 줄 알고 방에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나갔어. 문 닫는 소리에 선잠이 들었던 내가 깼지.
선잠에서 깨고도 그냥 아이 옆에 조금 누워있고 싶어 거실로 나가지 않았지.
그런데 난 네가 친구들과 거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어.
그때 그냥 깊은 잠이 들었으면 어땠을까, 너랑 지금도 내가 연락을 하며 지냈을지도.
모른 체 살아가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아. 그러고도 세상은 윤활유 발린 바퀴처럼 잘 굴러다니니까.
너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내가 가진 인맥이 탐났던 거야.
내가 가까이 지내는 선배, 그 선배와 그 선배친구들과 지내는 내가 너무 부러웠던 거야.
'아, 재랑 친구하면 저 선배들이랑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나랑 친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주변의 선배들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거라고 진작 말하지 그랬어.
그러고 보니 그제야 알 것 같아. 넌 내가 선배들과 여행가거나 놀러갈 때마다 따라 나섰다는 걸...그거였구나.
처음에는 그랬다치더라도 우리 또한 정말 가깝게 지냈잖아. 한번쯤은 솔직히 얘기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그때 내 심정이 어땠는지.
마음을 진정하고 잠자고 나온 것처럼 거실로 나왔는데 네 얼굴이 너무 보기 싫더라.
정말 너의 목소리가 너무 듣기 싫더라...
처음이었던 같아. 친구로 인해 상처받은 게.
어디까지가 너의 진심이니? 어디까지가 너의 진심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아니,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 마주 보기 싫었어.
그냥 오늘이 너와의 마지막이라고 가슴과 뇌에 새겼지.
사람마다 각자 자기의 믿음이 있고, 원칙이 있지.
너는 내 믿음에도 원칙에도 애정에도 다 얼음을 갖다 부었어.
넌 처음부터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 온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친분을 누리고 싶었던거야.
내게 검은 마음으로 온 것 까지는 이해 하겠지만 나랑 보낸 그 많은 시간까지 계속 검은 마음이었다는 게 너와의 친분을 끊어낸 이유야.
넌 모르겠지. 내가 왜 너에게 이유도 없이 연락을 끊어 버렸는지. 끝까지 모른 채로 살아.
네가 변명이든 해명이든 하는 꼴을 보기 싫으니까.
이제와서 너는 내가 궁금하구나. 난 네가 궁금하지 않아.
더 솔직히 말하면, 현재로 널 가져오고 싶지 않아.
22025년 제22회 베라쟈프 국제모델위원회 경주도자기축제 박옥순 디자이너 패션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