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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작에 대한 타인의 반응오늘의 이야기

 

 

내가 처음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조금 의아해했다. 나 같이 허약하고 저질 체력을 가진 애가 운동을 한다고. 그런데 나는 몇 년 내내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 대학도 그런 쪽으로 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운동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나를 운동하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아직도 운동하고 있냐고. 운동은 잘 돼 가고 있냐고.

 

내가 처음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조금 의아해했다. 나 같이 운동에 빠져 사는 애가 글쓰기를 한다고. 그런데 나는 몇 년 내내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책도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아직도 글 쓰고 있냐고. 글쓰기는 잘 돼 가고 있냐고.

 

내가 진로를 바꿀 때마다, 내 바뀐 진로에 대해 내 주변 사람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의아해하기. 계속 의아해하기. 친숙해하기. 당연하게 생각하기.

 

 

 

 

예전에는 사람들이 내 과거를 끈질기게 붙들고 사는 줄 알았다. 의도적으로. 내가 어떤 과거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내 과거 모습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서. 내 기준으로는 ‘한참’에 가깝게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나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변화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변화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내 주변인들은 내 과거를 움켜쥐고 살지 않았다. 그럴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나만큼 내 인생에 관심을 갖지 않을 뿐이었다. 이 사람이 이 인생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이 사람의 잠재력은 얼마나인지. 이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상상되는지…….

 

그들은 내가 과거에 살길 원해서 내 과거 모습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나라는 사람의 변화에 나만큼 민감하지 않을 뿐이었다. 내가 긴 시간 꼼꼼하게 준비를 마친 내 변화를 처음 목격한 그들은 아직 새로운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단지 그 이유로, 옛날의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변화가 못마땅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다른 길로 접어들 때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보인 의아함은 아무런 악의도, 적대감도, 비관도 포함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랬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늘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만 하는 내가 아니었다. 세월 따라 달라지는 한 인간에 대한 적응 시간,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것이었다. 그뿐이었다.

 

 

 

 

나는 나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충분히 오랜 시간을 거쳤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내 변화를 단숨에 받아들여 주길 기대했다. ‘쟤 지금 저거 시작해도 괜찮을까.’, ‘쟤 저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걱정하지 말고. 다 잘 된 일이라고만 여겨 주길 원했다.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해 주길 원했다. 내 미래에 대한 내 걱정은 건설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했고, 내 미래에 대한 남의 걱정은 단순한 초 치기라고 생각했다. 초 치기, 훼방……. 그런 게 아닌데.

 

나는 내가 새로 걷는 길을 걷기 전까지 그 길을 수도 없이 의심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 길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으면 했다.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았으면 했던 건, 내가 내 안의 의심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내 새로운 진로에 대한 의심을 시작하면, 내 안에 남아 있던 의심이 자극 받고 커질까 봐. 그러니까, 내가 내 길에 확신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응원만 했으면 했다. 그러지 않으면 흔들릴 것 같아서.

 

내가 하는 일에 스스로 자신감을 갖지 못하면, 외부에서 뜻밖의 반응을 만날 때, 그 반응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나에 대한 크고 작은 불신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저 사람들에게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을 믿게 된다. 그래서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 상대가 만들지 않은 관계의 균열을 나 혼자 보게 된다. 그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환상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내가 관계의 균열을 만들게 된다. 내 손으로. 하지만 그 손이 내 손인 줄 나는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뭘 시작할 때, 나 혼자만의 시간을 넉넉하게 갖는다. 새로 시작한 그것에 대한 내 확신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나는 홀로 시간을 보낸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고 보내는 반응을 내 멋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힘을 충분히 기를 때까지. 이것은 내 전반적인 관계를 지키는 일인 동시에, 내가 신중히 시작한 진로 그 자체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 없이 던진 말 몇 마디 때문에, 일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

 

뭔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 일에 100% 확신을 가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른 거 할 때는 몰라도, 일할 때만큼은 아무런 불안도 근심도 없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걸 진심으로 깨닫고 나서, 오히려 덜 휘청대고 덜 무너진다. 조심하니까. 불안이 극에 달하지 않게, 불안을 관리하니까. 근심이 공포가 되지 않게, 근심을 관리하니까.

 

그런 걸 보면, 약점 그 자체가 사람을 위태롭게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 받아들여지지 못해서 계속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약점이 나를 가장 위태롭게 만든다.

 

약점을 받아들이는 일이 한때는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겨 먹은 그대로를 스스로 인정하고 끌어안는 일이 나를 덜 다치게 하고 더 성큼성큼 걸어 나가게 한다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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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초나라(kjkyj) 2019-07-11 19:14:31

    저는 옜날에 반대쪽일을 하면 더 잘 된다는 글을 본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조폭들이 뜨개질을 하면 더 잘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박다빈님이 글을 이렇게 잘쓰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운동과 글쓰는 건 반대라고 생각해서요!   삭제

    • 바라보기(qkfkqhrl) 2019-07-11 02:43:44

      내가 무었을 하든 다른사람이 나에게 무어라고 하든 그것 자체가 문제될건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가 문제일것입니다.
      작은 변화든 큰 변화이든 타인은 나의 변화된 모습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봅니다.
      그것에 대해 궁굼할 뿐이고 본인들 생각대로 단정 하는경우가 그것이지요.
      나 스스로는 당연히 내가 부족한부분에 대해서 인정해야하고 또 어떤 과정을   삭제

      • 메이블록(maybugs) 2019-07-10 10:52:19

        그렇지요.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인정할 때 부끄럼 없이 받아들일때
        자신에 대한 신뢰가 한뼘은 커지는 것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받아 들이지 못할때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커지고요. 어려운 일이지만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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