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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노리배는 언제부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경성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대동강 그리고 개성에는 독특하게 생긴 노리배가 있었다. 이게 조선의 유습일까? 그들이 가져온 것일까?

'1935 코레아 스덴 베리만의 기억'에서의 대동강의 한 장면이다. 1935년 조선을 찾은 스웨덴의 유명한 조류학자이자 탐험가인 스덴 베리만이 찍었다.

기생 두명이 앞에 있고, 맨 뒤쪽에 뱃사공이 한가롭게 노를 젓고 있다.(대동강 수심이 얕나?) 배의 앞머리는 닭일까 봉황일까

배에 얹은 지붕의 위에 용이 있다. '용반봉무'라는 말도 있듯이 용의 배필은 닭이 아니라 봉황이겠다.

이런 배를 타고서 놀아나는게 일본의 유흥 문화를 가져온 것이겠거니 짐작만 했는데.....

"조선 풍토기"(난바 센타로, 이선윤 옮김)에서  개성의 강에 떠있는 놈을 또 발견했다.

그런데 저자 난바 센타로는 이를 '조선 귀족의 뱃놀이'라고 적고 있다는 것. 불쾌해진다. 그럴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귀족의 유흥 문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쩌다 뱃놀이 하는 그림에서 이런 류의 배를 본 것 같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럭저럭, 이런 게 인연이 되어 다이쇼 3년(1915년)에 일본인 화가가 '묵전하단유 ' 라는 그림을 보게 된다.

배의 앞대가리 장식에 '봉'이 없다는 거는 다르고....

지붕 덮개가 있다는 건 대동강의 것과 같다.

지붕에 차양까지 있고, 배의 난간은 화려한 옷감으로 걸쳐놓았다.

양쪽의 두 남자는 늙었는데, 여자들은 한결같이 젊다. 기녀들일까?

나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기생을 끼고 놀더라도 배위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수영을 잘 할지도 의문이고, 무엇보다도  위험(스릴)을 선호하지 않았다. 곳곳에 세워진 정자나 누각 같은데서 놀았을 것이다.  

"대륙을 걸어보니'(1931년작) 라는 책 중의 대동강의 배놀이에 대한 기록이다.

                                               출처

 

"모란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각별했다..... 전금문 옆에서 배를 나누어 타서 하류로 내러가는 건 즐거웠다.노래가 자연히 나왔다. 북조선의 독특한 머리스타일과 흰 옷으로 덮은 여인이 팡쿠시이(?)라는 이름의 세탁용방망이로 .... 강물의 표면을 스쳐오는 미풍을 받으며 먹는 도시락은 정말 맛있다. 약 한시간뒤 대동문아래에서 배에서 내렸다....'

대동강 배놀이는 대체로 이런 컨텐츠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의 나룻배는 저런거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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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9-07-10 17:05:05

    뱃놀이 하면 대동강 뱃놀이로 들리는데 이정도 되면일본에서온 뱃놀이 문화(대중문화) 일 수도 있거니와 지적하신대로 우리나라의 사대부의 뱃놀이는 아닐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뱃놀이는 태공의 뱃놀이가 연상이 됩니다.
    잘봤습니다   삭제

    • 메이블록(maybugs) 2019-07-10 16:18:12

      영화나 그림에서 본 조선의 배를 찾는다면 마지막 사진의 돛단배가
      맞을것 같은데, 대동강 놀이배 사진은 낯선감이 있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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