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둘 중에 뭐 주지?”

내 옷들이 걸려 있는 행거 앞에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뭘? 누구한테?”

내가 그렇게 물었다. 색이 비슷한 카라 티 두 장을 손끝으로 짚어 보며, 엄마는 속으로 뭔가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둘 중에 뭘 가져다주면 좋을지 따져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알 수 없는 누구한테 내 옷을 주려나 보았다. 나는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엄마가 다시 옛날 엄마로 돌아간 것 같아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물건들을 처분하는 사람.

엄마가 나를 힐끔거렸다. 조용히 서 있는 내가 의식된 모양인지. 엄마는 내 표정을 살피는 듯했다. 나는 그런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내 표정이 어떤지 느껴져서. 인상 쓰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평상시 표정도 아니었다. 엄마가 카라 티에서 손을 떼고 “됐다.” 했다. 안 줘도 된다고. 나는 아무 말없이 내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도 별말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가 골랐던 카라 티 두 장, 사실 내가 자주 입지 않는 옷들이었다. 하나는 거의 새 옷이었고, 하나는 완전히 새 옷이었다. 엄마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옷을 누구한테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 번 묻는 게 그렇게 어렵나? 줘도 되냐고, 이거 남한테 줘도 되냐고 묻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내 거잖아, 이거.”

기억 깊숙한 곳에서 앳된 내 목소리가 떠올라 귓가에 어른거렸다.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엄마는 나를 집착 괴물쯤으로 여겼다. 잘 쓰지도 않는 물건에까지 집착해서 발광하는 괴물. 아니면 욕심에 눈 먼 애. 나는 물건 때문에 화내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대하는 엄마의 방식 때문에 화내고 있었던 건데. 물건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는데. 내가 원한 건 물건이 아니라 따뜻한 엄마였는데. 나와 관련된 일을 할 때는 내 마음을 먼저 살펴 주고, 내 의사를 먼저 묻는 엄마. 욕심이었을까. 욕심이었겠지. 그때 엄마는 그저 살아가기에도 바빴고, 나는 외로웠다. 엄마도 외로웠겠지. 외로운 두 사람은 자기 하나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서로의 일에 서툴렀다. 우린 항상 자기 할 말만 했고, 자기 욕구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른 걸 살펴볼 여력이 없어서.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었다.

어린 나라도 일찌감치 철이 들어 엄마 상황을 좀 헤아려주고, 엄마 마음을 살뜰히 보살펴 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우리 관계를 진전시켜 나갔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런 이상적인 자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에게는 엄마 삶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내 삶 하나만 가지고도 버거워 죽을 것 같았다.

엄마가 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때, 나를 두고 어딘가로 가 버릴 때, 나는 엄마에게 내 마음을 차분히 이야기하지 못했다. 항상 성질부터 냈다. 신경질 때문에 눈알에 불이 붙어서는. 그땐 그냥 엄마 때문에 서운해 미칠 것 같았고, 무신경한 엄마가 너무 싫었다. 엄마가 나쁜 엄마라고 생각했다. 나쁜 엄마 아닌데. 온 힘을 다해 자식 둘 먹여 살리느라 주변 살필 겨를이 없는, 딱한 엄마일 뿐이었는데. 나는 그런 엄마를 볼 수 없었다. 그때 나에게 보이는 건 굶주리고 곪아 터진 내 마음밖에 없었다.

엄마는 “이게 니 돈으로 산 거냐. 전부 내 돈으로 산 거지.”라며 고개를 내젓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내 물건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얼른 주라고 끝까지 성화였다. 나는 내가 엄마 자식이 아니라, 엄마의 맏이 역할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가 항복하고 사과할 때까지 엄마는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를 지나칠 때마다, 엄마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방문 너머에서 엄마는 나에 대해 오래 불평했고, 가족들은 나를 구제불능으로 여겼다. 못돼 빠진 것. 어디서 저런 것이 나왔을꼬. 우리 식구들 중에는 저런 애가 없었는데.

세상에 내 편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가족들 말대로 내가 진짜 글러 먹은 인간인가 싶었다. 무슨 수를 써도 안 될 인간. 엄마와 가족들에게서 내쳐질 때마다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고, 그런 느낌이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 나는 밖으로 나돌며 가족들과 멀어졌고,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강렬한 애증에 시달렸다. 증오보다 사랑이 더 커서, 나는 늘 엄마에게 패배하였다. 굴욕감에 대한 구역질보다 사랑에 대한 갈급이 언제나 더 커서. 엄마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엄마가 사랑해 주길 원해서.

물론 나는 고분고분한 패배자가 아니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누적된 굴욕감은 어디 가지 않고 남았다. 손실 하나 없이 철저하게 쌓였다. 그렇게 쌓인 굴욕감은 내가 엄마와 싸울 때마다 폭발해, 엄마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는 엄마에게 수없이 복수했다. 엄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너무 약고 나쁜 자식이었다. 너무 내 생각만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만 엄마를 닮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자기 뜻에 따를 때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자기 뜻에 따르지 않을 때는 한없이 냉정한 사람. 그런 성격이 나에게 내면화되는 것도 같았다. 너무 닮기 싫었는데.

이런저런 문제로 엄마와 내가 싸운 세월을 다 합하면 몇 년쯤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 같던 세월은 서서히 종말을 맞았다. 우리가 진짜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 내가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나서야, 엄마와 내 관계는 제대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고 대화하기 시작했고, 서로가 자기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먼저 상처 주던 두 사람의 습관은 빠르게 해체되었다.

가족이 왜 제일 큰 스승이라는지 알 것 같았다.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거짓 행세 같은 게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들이 내면에서부터 바뀌지 않고는, 가족 체계가 개선되지 않았다. 괜찮은 가족이 되려면 괜찮은 사람들이 되어야 했다. 엄마와 내가 서로에게 괜찮은 가족이 되려고 노력한 모든 순간, 우리는 개별적인 인격체로서 성숙하고 있었다. 거저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거저 된 일이 아니기에, 각각의 변화들은 견고하였다.

내가 엄마를 싫어한 그 오랜 시간 동안 사실 나는 엄마를 싫어하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했을 뿐이지. 내가 엄마를 나쁘다고 생각한 그 오랜 시간 동안 사실 나는 엄마가 나쁘기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걸 주지 않는 엄마한테 심술이 났을 뿐이지.

아무리 철딱서니가 없다 해도, 나에게는 항상 이런 인지가 있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엄마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나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다. 이런 인지가 있어, 결국에는 돌아간 것 같다. 집으로.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이런 인지가 선명해질 때마다 나는 철이 들었다. 가족에 대한 미움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었고, 가족에 대한 욕심을 감사로 바꿀 수 있었다.

‘나만 힘든 거 아니다. 전부 나보다 힘들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가족의 불완전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엄마는 좋은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고. 그런 동시에 엄마는 완벽하지 않다. 나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뭔가를 끊임없이 뉘우치고 성장하지만, 간혹 그 뉘우침과 성장을 잊고 살기도 한다. 각자의 삶이 버거울 때면. 우리 관계는 좋아졌다 퇴보하기를 반복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며, 가족 간의 건강한 경계라는 것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싶다. 절대 만족하지 못할 줄 알았던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이 부자 삶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