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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잃어버린 물건들은 자질구레하게 많다.
내 부주의에서 생긴 일들이니 누굴 탓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소매치기나 강도를 만나는 일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아무리 인생이 경험의 축적물이라 해도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다.
또 이런 일을 겪는 사람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왠지 도둑과 강도란 말을 놓고 봤을때 도둑이 더 약하고 착해 보인다고 말하면 웃기는 것인가.
소매치기와 강도란 말을 놓고 봤을 때 그래도 소매치기가 낫다. 내 물건에만 탐내고 사람에게는 위해를 가하지 않으니 말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당한 그 일을 소매치기라 해야할지, 강도라 해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살면서 나에게 굵직한 두 사건이 있었다. 소매치기와 강도!
지금은 내 생애 첫 소매치기 이야기를 먼저 펼쳐볼까한다.
몇 년도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고1~고2 그 어디쯤이다. 그 날 비가 왔다는 걸 또렷하게 기억한다.
왜 기억하는지 이 글을 읽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당시 나는 빈혈로 두통과 어지럼증을 자주 호소했었다.
그 날도 학교에서 어지러워 책상에 엎드러 있으니, 선생님이 조퇴를 시켜줄테니 병원을 가라고 했다.
아침 조례 끝나고 1교시 시작 전에 학교를 빠져 나왔다. 근처에 병원이 있을리 만무했고, 병원을 가기 위해 시내로 나가야 했다.
학교는 시내와는 동 떨어진 곳이었다. 15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꼭 꾀병을 부린 사람처럼 어지럽던 머리가 멀쩡해졌다.
그래도 어쨌든 병원에 가야했다. 병원 약봉투라도 보여줘야하기 때문이다.
병원은 이른 시간인지 사람이 너무 없었다. 의사선생님이 진료보고 약 처방하기까지 채 10분 남짓 걸렸다.
시간이 남아 돌았다. 학교로 돌아가기 싫었다. 점심시간 끝나고 오후 수업부터 들어가자 마음먹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극장건물이었고 간판에는 <부시맨>을 상영하고 있다는 걸 크게 광고하고 있었다.
<부시맨> 몇 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평일 오전이라 영화 관람료도 할인되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렇게 표를 끊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4~5명의 사람들이 각자 다 떨어져 앉아 있었다.
혼자 이 시간에 극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이라? 뭐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니,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는 걸 굳이 설명 안해도 알 거라 생각한다.
뉴스와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될 무렵 내 옆에 한 사람이 앉았다. 남자였다.
속으로 '뭐야 널린게 자리구만. 하필이면 옆에 앉는거야? 변태인가?'
나는 극장 좌석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건 우산을 세우기 위해서 선택한 자리였다.
그래서 옆으로 한칸 옮기고 싶어도 오른쪽으로 움직일 자리가 없었다.
일어나 다른 좌석으로 옮기지 않은 이상 말이다. 앞으로 옮길까, 뒤로 옮길까 망설이고 있는 찰나 갑자기 내 바지 주머니에서 내 움직임이 아닌 다른 움직임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나는 주머니 바지 위로 손을 갖다댔다. 다른 사람의 손이 잡혔다.
그 남자의 손이 내 주머니 안에 들어있고, 난 그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순간 고함을 지르려고 하는데 뽀족한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너무 놀라 사람이 얼어 붙는다는 느낌을 아는가?
정말 입에서는 숨소리만 간헐적으로 나오고, 그 어떤 소리도 안 나왔다.
주머니속에 들어간 그 남자의 손을 잡은 내 손마조 힘이 풀려 맥 없이 떨어져 흔들렸다.
내 손이 떨어져 나가자 주머니에 들어있던 그 남자의 손도 내 바지 주머니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
그때의 그 느낌이란? 내 몸 안에서 뱀 한 마리가 유유히 기어 나가고 내 몸은 독이 퍼진 것처럼 마비되는 증상이 느껴졌다.
내 맨살을 닿은 것도 아니고 천을 사이에 두고 내 주머니에 담겨있던 손이었지만
뱀을 만지는 것보다 더 소름끼치고 몸서리쳐지는 순간이었다.
그 남자는 칼인지 송곳인지 실체를 알 수도 없는 그 무엇으로 내 옆구리에 위협을 가하며 복화술로 "조용히해. 소리지르면 죽는다" 속삭였다.
속삭이는 그 목소리에 머리카락까지 쭈빗 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난 어떤 움직임도 허할 수 없었고, 한 음절의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좌석이 있는 통로를 빠져나가 뒤로 나가는 동안에도 난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 몸은 분명 얼어 붙었다. 하지만 머리는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소리 지르면 저기 앉아 영화를 보는 사람이 나를 도와주러 올까, 과연 저 사람을 제압해 줄까, 아니 그 전에 저 사람이 먼저 다가와 이번엔 내 목에 뽀족한 무기를 찌르면 어쩌지, 아냐 그냥 바로 극장을 나가는거야. 내가 나가자마자 쫒아오면 어쩌지,왜 몸이 움직이지 않고 이 모양이지..'
머리는 만약의 수를 계산하느라 과부하 상태였고 몸은 뻑뻑하게 굳었다.
난 그가 출입문을 향해 밖으로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내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혼자 앉아있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갔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들고 있는 우산을 들어 날 겨냥하듯 들어보였다. 주시하고 있느니 허튼 짓 하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과 경고성 움직임이었다.
그가 우산을 들어 내게 경고하던 그 순간 스크린에서 나오는 환한 불빛으로 인해 어둡던 극장안이 환해지고, 그 남자의 눈과 생김새가 확연하게 너무나도 가깝게 코앞에 있는 듯 눈에 들어와 박혔다. 그래서 내가 우산을 기억하는 이유이고, 비가 왔다는 걸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 남자는 아까 내 옆에 앉았듯이 혼자 앉아있는 사람 옆에 가 앉았다.
그 남자가 선택한 사람이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걸 보고 판단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나. 바지에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일 정도로 떨고 있었다.
그 남자는 그 자리에 앉아서도 날 계속 예의주시했다.
이때다. 이때 움직여야 한다. 머리가 몸에게 마구 신호를 보냈다. 정신 차리라고.
난 우산을 무기잡듯 꽉 움켜잡고 극장 출입문을 향해 달렸다. 밖에 나와서도 우산을 펼칠 정신도 없이 앞만 향해 마구 달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도대체 저 안에서 뭔 일이 있었나. 그래 호주머니? 어 내 돈! '
난 그날 솔직히 돈을 꽤 들고 있었다. 2~3만원을 들고 있었다. 한달 용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갑을 가지고 있던 때도 아니라 책 사이에 용돈을 끼워놓거나 아니면 주머니에 담아놓는 타입이다.
자주 흘리고 잊어버리는 터라 지퍼있는 주머니에 넣어두려고 하지만 그 날 입은 옷은 지퍼 같은 게 없는 바지였다.
만 원짜리 한장을 병원비로 내고 천 원짜리로 거스름돈을 받았고, 거기다 영화비를 내고 남은 돈이 들어 있었다.
자주 잃어 버리는 탓에 주머니에 돈을 나누어 담아두는 버릇이 있다.
병원비와 영화비로 사용하고 남은 1,000원짜리 한두장이 그 남자가 앉은 왼쪽 주머니에 들어 있었고, 오른쪽 주머니에 2만원 정도가 있었다.
결국 그 남자가 훔쳐간 돈은 천원 남짓한 돈이 들어있던 왼쪽 주머니였다. 천만다행이었다.
아니 천만다행이라 하기에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다.
심야극장도 아닌 이 아침 극장에서 소위 소매치기를 당한 것인가? 아니 강도를 만난 것인가.
'내가 만약 돈을 나누어 담지 않았다면, 내가 통로 쪽 첫 번째에 앉지 않았다면, 그가 내 오른쪽 주머니 돈을 가져갔다면, 아니 더 나아가 그가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가는 걸 눈치채지 않았다면 그저 흘린 것으로 여기고 영화를 다 보고 나왔다면, 그 주머니에 손을 갖다대지 않았다면,그가 내 옆구리에 찌른 건 칼이었을까.. 수 만가지 생각으로 버스를 타고가는 내내 머리가 다시 어질어질 속이 울렁울렁 거렸다.
그 이후 나는 절대 평일이고 뭐고 혼자 영화 보러가지 않는다. 이게 내가 태어나 처음 겪은 소매치기와의 오싹한 만남이다.
결국 영화<부시맨>은 보지도 못하고 극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것이다.
내게 '부시맨=소매치기'로 각인되어 있다.
그 아저씨가 이 글을 보고 열 좀 받았으면 좋겠다. 내 오른 쪽 주머니에 만원짜리가 있었는데 ~~~
#소매치기 
계명대 파스타 맛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