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점심 먹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부터 속이 꽉 막히는 것이, 체기가 있었다. 조금 그러고 말 줄 알았던 체기는 점차 심해졌다. 나중에는 윗배 전체가 아프더니, 그 통증이 어깨까지 번졌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예사 체증이 아니었다. 웬만해서는 체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체기 때문에 당황하고 허둥거렸다.

나는 배가 부르면 곧장 식사를 멈추는 편이다. 배가 부른 느낌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데 어제는 배가 많이 부른데도 남은 밥과 반찬을 마저 먹었다. 식사 시간이 애매해, 저녁은 건너뛰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좀 든든히 먹어 두자고 생각했다.

“갈치 때문인가.”

문득 그 말이 튀어 나왔다. 매실차를 마신 직후였다.

체하기 전에 내가 먹은 건 갈치구이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볶음국수도 먹었고, 과자도 먹었고, 오디 주스와 파인애플 주스도 먹었다. 내 체기의 원인으로 꼽을 만한 음식은 여러 종류였고, 그것들 전부 내 체기의 원인이 아닌지도 몰랐다. 낮잠 자고 일어나자마자 식사를 해서 속이 부대낀 것일 수도 있다. 특정 음식 때문에 체한 게 아니라. 그런데 당시에는 내가 갈치 때문에 체한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이유는 당연히 없었다. 오직 심증뿐이었다.

“갈치 때문인가.”, “갈치 때문이겠지?”라는 얘기를 서너 번 더 꺼내면서 나는 갈치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가지기 시작했다. 갈치를 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아픈 만큼 갈치를 멀리하는 내가 있었다. 다른 생선 다 마다해도 갈치는 좋아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체기가 완전히 가라앉고 나서야, 나는 문득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또 시작이네 싶었다.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 원인이 복잡하게 존재하는 일을 두고 꼭 한 가지 원인을 꼽으려고 하는 고집. 그 고집을 또 부리고 있었다, 나는. 탓하려고. 나 말고 다른 곳으로 탓을 돌리려고.

굳이 탓을 하려면, 그 탓은 나에게로 돌아와야 했다. 갈치구이가 펄떡거리며 뛰어올라 내 허락도 없이 내 입속으로 들어온 게 아니니까. 누가 나를 꽁꽁 묶은 다음 갈치구이를 내 입 안으로 쑤셔넣은 게 아니니까.

점심 식사를 끝내기 전까지, 나는 신이 나 있었다. 식탁 위에 있는 음식들 전부를 좋아했으니까. 출출했던 참이었고. 가장 좋은 건 갈치구이였다. 그런데 속 좀 안 좋아졌다고 갈치 탓을 하다니. 근거도 없이.

갈치는 항변하고 나설 입장이 아니니, 나는 내 멋대로 갈치를 유일한 용의자 삼았다. 낯이 뜨거웠다. 내 내면 크기가 고스란히 보여서. 이토록 사소한 부분에서 나라는 인간의 진짜 사이즈가 나온다. 갈 길이 아직 한참이구나 싶었다.

어제 내가 겪은 급체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내가 갈치 탓을 아무리 해 봤자, 내 급체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그 식사를 직접 한 내 선택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급체의 원인은 원인일 뿐이다. 잘못은 아니다. 원인을 잘못으로 바꾸면, 원망의 대상이 생긴다. 배척의 대상이 생긴다. 갈치 안 먹고 싶다는 마음은 여기에서 왔다. 내가 원인을 잘못으로 바꾼 것에서. 잘못이라는 관념이 생기면, 나는 그것을 내 인생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 시도의 일환이었다. 이제 갈치 안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못을 박으려 한 것. 수십 년 동안 갈치 잘만 먹어 놓고, 이제 와서. 별것도 아닌 이유로.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갈치에 대한 근거 없는 거리낌을 힘껏 흩뜨려 놓으며, 나는 한 층 더 쌓이려던 내 낡은 습관을 바라본다. 얼마간 소홀히 되뇌었던 문장을 다시 되뇌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저 그것이다. 그것은 그저 그것이다.

2.

내가 하는 남 탓이 부질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질수록, 남이 하는 내 탓도 부질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어제오늘, 갈치와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 때문에 본인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두 차례 했다. 그 결정은 전혀 좋은 결정이 아니었고, 나는 그것 때문에 몇 년 간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잘못되게 만든 것 같아서. 그게 사실은 그 사람이 그 사람 인생에 대한 선택을 스스로 내린 건데, 그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원망으로 범벅이 된 그 사람 말들만 머릿속에 가득해서.

그로부터 몇 년쯤 더 지났을 때,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그 사람이 ‘그 결정’을 내린 건, 다른 옵션이 없어서였다는 이야기. 그 사람 본인이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이야기를 직접 했다고 한다. 웃으면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내가 아무 말 못하고 놀라고만 있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나를 밀치듯이 건드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야, 내 말 맞잖아! 그때 내가 몇 번을 말했어? 그거 니 때문 아니라고, 내가! 당연하지. 그 큰 결정을 어떻게 너 하나 때문에 내리겠냐. 하여간 믿어야 될 건 안 믿고, 안 믿어도 될 건 잘도 믿어요. 그 사람은 니 아프라고 그냥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던진 거야. 몰라, 그땐 니가 미워서 전부 니 탓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 근데 그렇다고 그게 다 사실이니? 어? 이 답답아! 주는 상처 족족 다 받으니 그렇게 세월이 더디게 가지. 그 사람은 지금 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관심도 없을 거다. 주변 사람들이 해 주는 말들도 좀 믿어.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 거기에 의심을 좀 하고. 어? 너 땜에 내가 속이 터져서……. 너 버리고 간 사람 말을 니 옆에 있는 사람 말보다 더 오래 기억하면, 니 옆에 항상 있는 나 같은 사람들 힘 빠져서 어떡해. 안 그래? 미안해 말고 생각을 똑바로 좀 해 봐. 니 죄책감 하나 치우면, 거기 몇 사람이나 더 들어가 살 수 있는지 알아?”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