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겨울이었다. 가족 여행으로 부산에 갔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부산에 살았기 때문에, 얼굴도 볼 겸.

부산에서 사흘인가 나흘을 보냈다. 

평소 가 보고 싶었던 곳들을 들렀고,

먹어 보고 싶었던 것들도 두루 먹었다. 

냉면 귀신인 나는 부산에 가서도 냉면을 먹었다. 

정확한 상호명은 모르겠는데, 해운대 지하철 입구에서

해운대까지 걸어가는 길 어딘가에 있는 냉면 집에 들렀다. 

통유리 문을 열자마자 육수 냄새가 확 들이쳤다. 

거긴 냉면 전문점은 아니었다. 만두 전문점이었는데

냉면도 판매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만두와 냉면을 시켰다.

나는 물냉면을 먹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비빔냉면을 먹었다. 

무슨 얘기를 하면서 냉면을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별것 아닌 얘기로도 깔깔대며 웃었다. 

누군가는 면 사리를 추가해서 배부르게 식사를 했고

나는 창밖에 내리는 진눈깨비를 쳐다보다가

가족들 얼굴을 쳐다보다가 했다. 행복했다. 함께여서. 

내가 뭘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누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서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그런 순간은 많은 말을 수반하지 않고도 충만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다. 

가까운 사람들과 낯선 곳에 가면 그런 부분을 여실히 느낀다.

굳이 누가 뭘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묵묵히 챙긴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내가 냉면을 먹자고 하지 않았는데

가족들이 냉면을 먹자고 했다. 내가 냉면 좋아한다고. 

어제랑 그제는 누가누가 좋아하는 거 먹었으니까

오늘은 너 좋아하는 거 먹자. 

그 날 해운대 바다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태어나서 해운대에 처음 가 본 거였는데.

'해운대.' 하면 냉면하고 가족들 얼굴 그리고

냉면 팔던 가게 내부의 따뜻함만 떠오른다. 

냉면을 다 먹고 나와서 우리는 근처 시장에 들러

뜨거운 팥빵과 어묵을 사 먹었다. 

팥빵을 좋아하는 사람과 어묵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 앞뒤로 걸었다.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