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누가 탄식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비빔밥 뚝배기 안에 있는 호박을 숟가락으로 뜨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마자 당신과 내 눈이 마주친다. 당신은 젓가락을 벌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탄식의 출처는 당신이 아니었다. 당신 바로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이 다시 “아…….” 하는 소리를 낸다. 당신이 두 눈썹을 치켜들며 고개를 비스듬히 튼다. 나는 뜨다 만 호박을 다시 떠서 입속으로 넣는다. 분식집 사장님이 주방에서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응, 언니, 글쎄 어제 내가 전화를 왜 못 받았냐면, 응, 아니, 일단 들어 보라니까…….

 

“오늘 망했어.”

 

당신 뒤에 앉은 사람이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티슈를 세 장 뽑는다. 비틀려 버린 기분이 손동작에 고스란히 실린다. “아, 라면 국물. 두 방울이나 튀었잖아. 하필 튀어도 이런 데 튀냐.”

 

당신과 내 시선이 다시 한 번 얽힌다. 당신이 입을 움직여 ‘옷에 라면 국물 튀었나 봐.’라는 말을 소리 없이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티슈로 옷을 벅벅 닦고 있는 사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 느껴진다. 나는 이슬 맺힌 스테인리스 컵을 쥐며 고개를 숙인다. 내가 라면 국물을 그 사람한테 튀긴 것도 아닌데, 그 사람 일행과 눈이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분식집 안에 있는 손님은 우리 두 팀뿐이고, 분식집 홀은 작은 방처럼 좁다. 나는 뚝배기 안을 들여다본다. 아직 비빔밥이 반이나 남았다. 얼른 다 먹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오른손 주먹 안쪽으로 자기 왼쪽 어깨를 통통 치더니 다시 젓가락을 쥔다. 태연한 얼굴이다.

 

 

 

 

“급하게 먹었지?”

 

분식집을 나와 조금 걷다 말고 당신이 나를 붙들며 물었다. 당신보다 조금 앞서 걷고 있던 내가 당신을 돌아본다. “좀.”

 

사실 좀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반쯤 남은 비빔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숟가락 안에 밥을 단단히 쌓아서. 목 막히면 물을 마셔 가면서.

 

내가 숟가락을 빨리 놀리기 시작한 때부터, 당신은 젓가락을 허공에 놓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더 안 먹는 거냐고 내가 소곤소곤 물어도,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내 두 눈동자를 번갈아 볼 뿐.

 

“그 사람 때문에? 라면 국물?”

당신이 다시 물었다.

“어, 분위기가 좀 그래서.”

“불편했어?”

“아, 너무 불편하다, 이런 건 아닌데. 그냥, 뭐. 계속 불평을 하니까. 거기 더 있고 싶지 않아서. 자긴 신경 안 쓰는 눈치더라. 하나도.”

“말했잖아. 난 안 듣고 싶은 건 안 들어. 귀에 들어와도 안 들어.”

그렇게 말한 당신이 어깨 한쪽을 들먹이며 다시 걷는다. “꽈배기 먹고 싶다. 꽈배기 파는 데 없나, 이 근처에. 자긴 참, 아직도 말랑말랑하다.”

“뭐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질문 끝에 당신이 조금 웃으며 내 손에 깍지를 낀다. “자기는 자기가 되게 무뚝뚝하고 정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나는 자기 안 그런 거 같다고 계속 말하고. 우리 한 시간 동안 그 얘기만 했어. 빙수 먹으면서. 아니지, 빙수 거의 안 먹었지. 얘기하느라 바빠서. 맛있었는데, 빙수. 왜 그땐 자기한테 자꾸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 자기에 대해서 난 쥐뿔도 몰랐는데. 그 날 내가 말 한 마디, 한 마디 꺼낼 때마다 자기가 움찔거렸어. 크게. 눈이 커지고 몸이 흔들거리고. 내 눈에는 자기가 전혀 무감각해 보이지 않았어. 오히려 그 반대로 보였지. 근데 자기는 자기가 되게 덤덤하고, 덤덤해서 문제래.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거야. 이 사람 대체 뭐지, 싶더라. 덤덤해지고 싶어서 본인이 덤덤하다 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건지. 그동안 너무 예민한 사람들만 만나서, 자기가 상대적으로 덤덤한 줄 아는 건지. 무슨 취조실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자꾸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러는 자기 보고 있는데, 마음이 조금 이상하기도 했어. 마음이 아픈 것까지는 아닌데, 뭔가, 마음이 쓰였어. 나중에는 내가 포기했잖아. 자기가 너무 집요했어. 왜 그랬어? 나 이 질문 처음 하나?”

 

“응.”

그 대답을 남긴 나는 숨을 들이켜며 머릿속을 정돈하기 시작한다.

“대답 안 해 줄 거야?”

“잠깐만. 정리하고 있어, 대답.”

“정리 다 되면 말해 줘. 우리 저기 가 볼래? 왠지 꽈배기 팔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한 당신이 내 손을 놓고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당신 발끝이 가리키는 곳에 작은 제과점이 있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처럼 보이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설탕 꽃으로 장식된 버터크림 케이크를 여전히 팔 것 같은 곳.

 

 

 

 

“드시고 가셔도 되는데요.”

 

제과점 사장님이 당신에게 말했다. 당신이 사장님을 돌아본다. 꽈배기 고를 때 당신이 했던 말을 사장님이 들은 모양이었다. 어디서 먹지. 근처에 먹을 데 있으려나.

사장님이 빙긋 웃는다. “저기 앉아 드시고 가세요.”

 

사장님이 손끝으로 빨간 가죽 소파를 가리킨다. 당신이 나를 쳐다본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당신이 빵 봉지를 벌리며 소파 쪽으로 걷는다. 사장님은 카운터를 지나 다시 어딘가로 사라진다. 빵 만드는 곳으로 들어간 듯했다. 희미한 인기척과 함께 묵직한 물건을 들었다 놓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장사가 좀 되나 봐, 여기. 꽈배기가 신선하네. 꽈배기가 신선하다고 하면 말이 좀 이상한가.”

꽈배기를 우물거리며 당신이 말했다. “아무튼 다행이다. 난 이런 데가 잘 되면 좋겠어. 생각은 다 정리했어?”

“대충?”

“여기서 말하기 그럼 나가서 말해도 돼.”

 

당신이 빵 봉지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먹어. 꽈배기 좋아하는 건 자긴데. 이젠 내가 이거 더 좋아하는 거 같다, 어째.”

나는 당신 옆에 앉아 빵 봉지 안을 들여다본다. “자기가 그 날 이후로 그런 얘기 의식적으로 피한 거, 나 알아.”

“어떻게 알아? 내가 다 피했는데. 내 나름 요령껏. 어설프게 피했나 보네.”

새끼손가락으로 입꼬리를 털며 당신이 말했다.

 

“성격 얘기 같은 거 나오면, 자기가 대화 화제 돌리려고 애쓰는 거 같더라고. 내가 그 날 너무 완고했지? 아니라고만 하고. 자기 말은 다 아니라고만 하고. 그래서 그런지, 자기가 그런 부분은 안 건드리려고 하는 거 같더라. 배려해준 거 고마워.”

 

“자기 배려해 준 거 아니야. 내가 그 부분 계속 건드리면, 자기가 나한테서 도망칠 것 같았어. 한 치도 안 물러서고 버티다가, 한 순간에 내 눈앞에서 사라질 거 같았어. 자기가 사라져 버리는 건 싫었어. 자기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 마음이 더 컸어. 이 사람을 계속 보고 싶다는 마음. 자기를 계속 보려면 내가 그만둬야 했어. 자기 파헤치는 거. 사실 내가 처음부터 선을 넘은 거지. 언제 봤다고 자꾸 본모습을 보여 달래? 웃긴 거지. 지가 뭐라고. 그 날 자기가 나한테 그랬잖아. 내가 나에 대해 아니라고 하는 건, 그냥 아닌 거예요. 그 말 듣고 정신 번쩍 나더라.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싶고. 미안했어. 함부로 대해서. 기분 많이 나빴지?”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신기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나에 대해 어떻다고 말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거든. 날 좀 겪어 본 사람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만 나한테 말해. 생각보다 너 무르다고. 나를 어느 정도 관찰한 사람들도 할까 말까 한 말인데, 그거. 처음 만난 사람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니까. 신기했어.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 만날 때도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신경쓰잖아. 근데 자기는 그런 보통 사람들 같지가 않았어. 자기 마주치자마자, 자기한테 되게 많은 것들을 간파당하는 기분이 들었어. 아마 사실이었겠지. 근데 자기,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런 말 안 하더라. 당신 어떤 것 같다, 그런 말.”

 

“원래 나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 아니야. 그 날은 뭐에 홀린 것처럼, 그랬어.”

말끝을 얼버무린 당신이 빵 봉지를 집어 들고 일어선다. “가자.”

 

 

 

 

“그럼 나한테만 그랬던 거야?”

 

제과점 밖으로 나오며 내가 물었다. 당신이 횡단보도를 건너다보며 “아마도.” 하고 말했다. “주체가 안 된다고 해야 하나. 그 날은 하여간 이상했어. 자기가 방어적으로 굴수록 나는 공격적으로 굴었어. 너무 이상하게, 내가, 그랬어. 그래서 그 날 자기하고 헤어지고 내가 자기한테 문자 보냈잖아.”

 

“다 읽느라 눈 빠지는 줄 알았는데.”

내가 웃으며 말하자, 당신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 쉰다. “진짜 너무 미안했어. 진짜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타자마자 머리를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보자, 아직 땜빵 남아 있나.”

“없어.”

 

“뭐, 공격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냥 자기는 계속 자기 주장만 했지. 담담하고 일관되게. 근데 그 주장이 사실이었잖아. 나는 그게 사실이란 걸 부정하고 싶었어. 부정하고 싶다는 게 뭐야. 알고 있었단 거야. 내가 난데, 설마 내가 모를까 봐? 내가 견고하지 않다는 거. 나도 알고 있었어.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인정이 잘 안 되더라.”

 

거기까지 말한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 덤덤하다는 말. 사실 난 덤덤한 게 아니라, 생각이 많아서 행동이 느린 건데. 할 말이 없어서 오래 침묵하는 게 아니라, 넘치는 말을 간추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오래 침묵하는 건데. 마음이 없어서 굼뜬 게 아닌데. 마음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 다 짊어지고 가느라 굼뜬 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사정 같은 거에 별로 관심 없더라. 내 행동에 상처 받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 진심을 믿어 주지 않았어. 내가 진심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전부 핑계라고 생각하더라. 내가 거기에서 상처를 받았나 봐. 상처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상처를 받았나 보더라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얘기를 일절 안 하게 되더라. ‘당신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아라.’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거야. 모든 사람들하고 거리를 둔 거지. 나를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누군가와 제대로 가까워지겠다는 마음을 포기한 거야. 내 행동 몇 가지로 나를 완벽하게 오해한 사람들한테 상처 몇 번 받았다는 이유로, 나는 모든 사람들한테서 돌아섰어. 나는 하나도 덤덤한 사람이 아니어서. 하나도 단단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게 살고 있는데 자기가 나타난 거야. 자기가 내 안을 막 들추는 거야. 그거, 내가 아무도 못 들추게 만들어 놓은 줄 알았는데. 자기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환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은 거야. 솔직히 말할게. 처음에는 무서웠어. 자기가 뭘 해서 무서웠던 게 아니라, 자기가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 같다는 기분 때문에. 사람들 전부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속으로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내 본심까지 자기가 다 보고 있는 거 같았어. 그래서 무서웠어. 자기라는 존재가. 나도 안 보고 싶은 내 마음까지 자기는 다 보고 있는 거 같아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길 애타게 기다렸으면서도, 막상 자기가 나타나니까 무서웠어. 누구한테 다시 마음 열고, 그 사람에게로 있는 힘껏 다가가다가 또 상처 받지 않을까 해서. 당신이 반가운 만큼 당신이 반갑지 않았어. 나를 다 아는 것처럼 왔다가 다시 나를 오해하고 나를 버릴까 봐, 당신이. 같잖은 두려움이라는 거 알아.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부 알까. 오해도 하고 착각도 하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게 인간관계라는 거, 나도 알지. 근데 그때는 그런 두려움이 나한테 있었어. 마음을 너무 오래 닫고 살았더니, 상처 하나 받는 거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내가 있더라.”

 

그렇게 나는 말을 끝냈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당신은 당신의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다.

“왜 내 옆에 계속 있었던 거야. 창문 반 뼘도 안 열어 주는 내가 뭐 예쁘다고.”

 

내가 그렇게 묻자, 당신이 나를 돌아본다. “처음에는 자기한테 미안해서. 내 성에 찰 때까지 자기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그 다음에는 자기가 불행해 보여서. 외로워 보여서. 다른 사람들 불행이나 외로움에는 내가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한 적이 없는데. 자기가 불행해 보이고 괴로워 보이는 건, 싫었어. 내가 그것들을 어떻게 해 버리고 싶었어. 자기가 안고 있는 불안까지도. 사실은 자기가 나하고 너무 닮아서. 자기를 보면 자꾸 나를 보는 거 같아서. 자기 곁을 떠날 수가 없었어. 날 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자기하고 같이 극복하고 싶었어. 불행, 외로움, 불안, 이런 것들. 이것들 극복하겠다는 생각을 생전에 한 적이 없는데. 자기를 볼 때마다 자기하고 같이 이것들 이겨내고 싶었어. 몰라, 왜인지. 그렇게 틈 날 때마다 자기 보러 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도 나를 보러 오더라. 그러다가 나중에는, 별다른 목적 없이도 자기 만나는 게 좋았어. 처음엔 헷갈렸어. 내가 자기를 연민하는 건지 사랑하는 건지. 그래서 자기가 행복해질 때까지 기다렸어. 자기가 더 이상 불행해 보이지 않을 때 내 마음이 어떨지 보려고. 자기 불행이 끝날 때 자기에 대한 내 마음도 끝난다면, 나는 자기한테 연민만 한 거잖아. 나중에 깨달았지. 연민이 커지고 커지면 사랑이 되는구나. 연민으로 시작한 마음도 사랑이 될 수 있구나. 처음에는 자기 불행이 내 마음에 걸렸는데, 어느 날부터는 자기라는 존재 자체가 내 마음에 걸렸어. 물론 모든 연민이 다 사랑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거야. 아무튼 나는, 지금은, 자기를 사랑해. 지금은 자기를 사랑해서 자기 곁에 있는 거야. 뭘 질문한 거야? 질문은 까먹고 내 얘기만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