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나이(?)와 냉면

몇 년 전이다. 여름 즈음하여 사무실 근처에 평양냉면 전문점이 생겼다. 지나다니면서도 별 의미 없이 보고 있었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꽤 넓은 주차장에 차가 꽉꽉 차고 심지어는 도로에서 대기하는 차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되니 호기심이 생겼다. 또 그 당시 TV에서 유행하던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서도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자칭 냉면 덕후라는 '존 박'이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에 대해서 열을 내며 이야기 하던 때이기도 하다.

때마침 더운 어느 여름 날 사무실 직원들이랑 그 냉면 집 이야기가 나와 말 나온 김에 한 번 먹으러 가보기로 했다. 열두시쯤 가면 복잡하고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일찍 온 소님들이 빠져나갈때 쯤 해서 사무실 직원3명이랑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여전히 차들이 많이 있었다. 주차 관리하시는 분에게 차를 맞기고 식당 안에 들어가니 그 넓은(약 80평정도) 식당에 빈 테이블이 두세 개 정도만 눈에 띌 만큼 손님들이 많다 보니 평양냉면에 대한 기대치와 눈높이가 올라가는 게 당연했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있기에 손님들이 이렇게 많을 까 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냉면을 주문했다. 싸나이(?) 들이라 물냉 몇 개 비냉 몇 개 이런 거 없다. 물냉 네 개요! 같은 메뉴로 주문하면 기다리는 시간도 줄어 들겠지..... 주위에 냉면을 먹는 다른 손님들의 만족한 표정들을 보며 우리들의 기대치와 눈높이는 한참을 높아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냉면이 나오고 모두들 젓가락을 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육수부터.... 한 모금 마셨는데...음 ... 맛을 모르겠다. 밍밍하다. 존 박이 ‘슴슴하다’ 라고 표현 했던 맛이 이것인가 싶다. 다시 한 모금 마셔봤다. 여전히 밍밍하다.(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혹시나 내가 못 느끼는 다른 맛이 있나 해서 직원들 표정을 보니 다른 직원들도 그렇다.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긴가민가한 표정들이다. 성격 급한 직원 한명이 못 참겠는지 한마디 한다. '아니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에이 괜히 왔다. 차라리 비냉 시킬 걸...'

다른 냉면집 보다 가격도 일~이천 원 정도 더 비쌌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할까 라는 생각에 잠시 고민하다 결국에는 내 취향대로 가야겠다. 식초 한 바퀴, 겨자 두 바퀴,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빠알간 양념장 한 숟가락...(육수가 붉은 색으로 변했다) 그렇게 휘휘 저어서 한 젓가락 먹어보니 이제야 냉면 같다. 내가 하는 양을 보고 옆에 있는 직원 둘도 부랴부랴 이것저것 섞어서 먹기 시작했고, 성격 급한 그 직원은 내가 다시는 이집 오나봐라 이렇게 씩씩 그리면서도 끝까지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그렇게 다 먹었다.(아, 참! 이 직원은 매운 음식 잘 못 먹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직원들은 속았다는 표정으로 실망한 것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고 경상도 싸나이(?)들의 평양냉면 체험은 끝이 났다. 식초의 새콤함과 겨자의 톡 쏘는 맛 그리고 매운 고추의 얼얼함이 없는 평양냉면은 우리에게 이도저도 아닌 '밍밍함'으로만 남았고 직원들중 어느 누구도 다시 그 냉면집에 가자는 사람은 없었다.

화끈함을 좋아하는 경상도 남자들에게 평양냉면은 친해지기 어려운 음식인가 보다!!!

그 식당은 여전히 장사가 잘 된다.

억수로빠른 거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