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감정을 사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내 삶을 통틀어 누군가의 감정을 사들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난 인간관계에 있어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상황에 의해서나 아니면 타의에 의해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친해지고 나면 마음을 내어주는 일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 된다.

하지만 선배는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간 유일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감정을 사들이는데 그렇게 나를 헌신한 적이 없었다.

동기들보다 선배와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고, 어느 새 나는 선배가 추진하는 모든 여행에 자연스럽게 동행하고 있었다. 앨범 안이 온통 그 선배와의 추억으로 물들었다.

같이 있게 되면 바이러스에 전염된 것처럼 웃게 된다. 이 선배는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마치 영화 <초콜렛>에서 줄리엣 비노쉬가 만든 고대 마야인의 카카오 칠리 초콜렛을 먹으면 사랑에 빠지거나 정열적이 되는 것처럼 그저 햇살이 있어도 웃고, 비가 와도 웃고, 딱히 유머가 없어도 웃었다.

난 그 선배와 단 한번도 우울한 적이 없었다.

선배를 너무 좋아해서 조금의 빈틈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깝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 같다.

같이 있지 않을 때도 채워지는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항상 너무 밝아 탈인 사람.

한번도 울어 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 내 신경은 온통 그 선배의 입가에 가있다.

선배와 보내는 시간이 왜 그리 좋았을까.

내가 여자를 좋아했나 착각이 들 만큼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로 난 그 선배가 좋았다.

이유는 밝은 에너지에 끌려 그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 내 앨범 정리를 하며 "뭐가 좋아서 이렇게 입이 찢어지게 웃었을까?" 하는 것이다.

엄마가 보는 사진들을 봤다. 선배랑 여행간 사진들이었다.

7살 개구장이 같은 표정의 선배였지만 속은 참 깊었다.

그렇게 내 앨범 속 선배와 나는 배꼽이 떨어져 나갈만큼 웃고 있는 사진들 뿐이다.

웃느라 얼굴이 이쁘게 나오지 않은 사진들 뿐이지만 엄마처럼 너희들은 뭐가 신나 입이 찢어지냐고 물을 만큼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왜 그렇게 웃었는지 모를, 왜 그렇게 행복했는지 생각하고 말고의 일도 기억나지 않는다.

허파에 바람 든 사람 같다는 엄마의 표현 그대로 이유없이 즐겁고 행복했다.

그냥, 마냥 좋았다.

길거리에서 장난치고, 군것질하고 역 대기실에서 졸고,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제대로 포즈 잡은 사진 한 장이 없다. 장난치느라,당하느라.

앨범 속에 선배와 있을때 미소가 아닌 입이 쩍 찢어질 정도로 웃고 있는 내가 있다.

내가 이렇게나 웃었구나, 신기할 정도다. 웃다가 배가 아픈 날이 너무 많았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하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웃다 앞 뒤로 넘어지는 날이 넘쳤다.

난 그 선배의 껌처럼 붙어 살았다.

선배가 향하는 그 모든 부분을 보았고, 그 선배가 관심 가지는 모든 부분을 섭렵했다.

민망해도 웃고, 부끄러워도 웃고, 너무 웃어 저 선배 입이 커진게 아닌가 싶었다.

입술은 얇은데 입은 컸다.

졸업하고도 사회에 나와서도 우리는 그렇게 철부지처럼 웃고 살았다.

그런 언니가 결혼해 아들 둘을 키우는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전화하면 아들 둘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한번도 투덜대는 걸 못 봤다.

"언니는 슬픈 적 없어?"라고 물으면

"왜 없냐? 있지! 슬퍼한다고 달라지냐!"

"그렇지, 슬퍼한다고 달라지지 않지!"

내 삶에 있어 이보다 더한 해피 바이러스는 없었다.

선배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사들이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그래, 누구를 이렇게 간절하게 원해 내가 먼저 다가가 본 적도 없었다.

가진 거 하나 없이 웃을 수 있는 사람, 내가 유일하게 그 사람의 긍정을 사들이고 싶었던 관계였다.

선배의 웃음을 구입하기 위해선 아까울 게 없었다.

가장 찬란하게 웃었던 그 선배와의 모든 시간들이 내게는 그저 세상 걱정 하나 없는 환한 웃음만이 존재했다.

난 이렇게 긍정적이고 밑도 끝도 없이 밝은 사람을 사들이고 싶다.

그들과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사들이고 싶다.

우울할 때면 이 언니의 웃음소리를 귓가에 떠오른다.

우리는 남들이 보기에 항상 속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내가 웃음이 고픈가? 우울한가? 왜 자꾸 사진만 들여다 보고 있지?

송이든

#감정 #웃음 #해피 바이러스 #사들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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