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에 관한 징크스

예전에 여름 휴가를 이용해 여행을 가게 될 때마다 겪는 징크스가 하나 있었다.

그건 내가 수영복을 챙겨 가면 그 날은 꼭 비가 온다.

일기 예보를 확인했는데도 그것마저 내 믿음을 저버린 적이 많았다.

내가 일기예보를 믿고 우산을 챙겨 가면 그 날 비가 오지 않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래도 우산은 그나마 다행이다.

여름하면 바닷가이고, 바닷가하면 수영이 아닌가.

여자들은 수영복에 대한 환상이 있다.

비키니를 입을까, 원피스를 입을까?

수많은 고민, 고민 끝에 하나를 장만하여 트렁크에 담아두기까지

많은 감정과 시간를 소요한다.

그리고 수영복 입고 모래사장 위에서, 물 속에서 노닐 상상으로 부풀어 있게 된다.

하지만 날씨가 그런 내 의지와 희망을 뭉개 버린다.

두세 번 그런 징크스를 겪고 나니, 이건 내게 비키니를 입지 말라는 신의 계시로 알아들었다.

그 이후, 순응하겠다 마음먹고 여름 휴가때 수영복을 따로 장만하지 않았다.

트렁크에 수영복을 담아 놓지 않았다.

그냥 날씨가 좋아 바닷가에 들어갈 수 있을 상황이면, 그저 짧은 반바지와 나시를 입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 놀러갈 때 츄리닝 입고 노는 느낌이 든다.

수영복을 안 챙겨가니, 날씨는 왜 이리 좋은 건지. 그래 수영복과 나는 인연이 없나보다.

그래 포기하고 산다.

수영복 입고 해변가에 누울 일은 없는 운명이다.

여름이면 다른 친구들과 다른 선이 내게 생기는 이유다.

내 몸에는 반바지와 나시 모양인 태양의 흔적이 남는다.

참 날씨란 것이 요상하다.

내가 무언가를 미리 준비하면 그 미리 준비한 것에 대한 것을,

무참하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힘을 발휘한다.

내가 비를 몰고 다닌다는 말을 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는 나랑만 여행을 가면 꼭 비가 온다고 투덜댔다.

"네가 비를 몰고 다니는 것 같아"

그냥 그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가볍게 웃었지만 솔직히 속으로 누구보다 서운했다.

챙겨간 수영복을 입어보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그런 식의 저주(?)같은 말을 들으니 내 운명이 무지 서글퍼졌다.

내가 도대체 수영복을 입어 본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