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격자무늬 창으로 칸칸이 들어온 오후의 햇살이 잘 닦아 놓은 골마루에서 더욱 따사로운 교실 한 켠에 낮은 책장이 한가로이 서 있다. 단발머리 여자 아이와 까까머리 남자 아이들이 작은 의자 하나씩 차지하고 책 읽기에 열중한 사이 어리숙한 모습으로 책꽂이를 살피던 아이는 조심스레 책을 꺼내 들추어 본다, 제목이 무엇이었더라.... .

 책보에 책을싸서 허리에 둘러메고 높다란 계단을 내려와 프라타너스 그늘이 길게 누운 운동장를 걸어나오던 발걸음이 얼마나 조심스러웠던지. 들판 사이로 난 곧은 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동안 무성하게 포기를 늘이며 자라는 벼줄기에 초저녁 이슬이 맺히고 도랑에는 고동이며 미꾸라지가 한창 흙을 뒤집으며 새끼를 치던 초여름이지 싶다. 내가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과 책을 만난 날이,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나는 얼떨결에 하교 대표로 군 대회, 도대회까지 나가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교장실로 인사를 드리러 가곤 했다. 어쩌다. 쓴 글로 학교 대표가 된 것이 어리둥절하기만 한 어리보기가 교장실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주눅이 들었는지 어깨를 오그리고 앉은  중에도 교장 선생님 뒤로 놓은 커다란 나무 책장은 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양장으로 반질 거리는 수많은 책들. 친절한 교장 선생님께서 빌려 주신 책은 읽기도 전에 두근거리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학교 도소관의 책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만큼 깨끗한 새 책을 빌려 보려는 욕심에 더 열심히 글을 지어낸건 아니었을까.

 책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새로운 새상에서 나를 안내했고 책에서 만난 수많은 지식에서 얻는 기쁨은 교과서까지 세세하게 읽게 만들어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의 성적까지 덩달아 숙쑥오르게 만들었으니 학교 도서관과 책은 나를 자극하고 성장시키면서 늘 곁에 있는 인생의 스승이 된 셈이다.

 졸업과 함께 아쉬운 마음으로 초등하교의 책들과 이별한 나는 중학교에 더 근사한 도서관이 있으리라는 기대에 자못 부풀었다. 교사 하나를 사이에 뒤고 같은 울타리에 있는 고동학생과 함게 이용하는 중.고등학교의 도서관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 나의 위안이 되어 줄 책은 어떤 모습으로 내 손길를 기다리고 있을까.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점심시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어디선가 들어본 작가 이름만 보고 대출을 신청한 책을 받은 나는 그 두께와 잘디 잔 활자에 질려 버렸다. 제법 책깨나 읽었다고 자부하던 터라 어떻게든 읽어 보려고 한동안 끙끙거리다 도저히 읽어 낼 수가 없어 반납하고 말았으니 그 책은 솔제니친의 「암병동」이었다.

 그 후 학교 도서관으로 다시는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던 이유는 1학년 때부터 방과 전후로 보충수업을 하며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학교의 방침 때문에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학교 도서관에 어떤 책이 있는지, 중학생수준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서관이 늘 열려 있지도 않았고 더러 열려 있더라도 폐가식이어서 대출카드만 보고는 어떤 책인지 알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이려면 아이의 성장 과정과 수준에 맞는 적절한 독서지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며 지금도 내 삶의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다시 책 읽기에 재미를 들인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고향을 떠나 인근 도시에서 홀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나는 어느 조회시간에 도서반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손을 번쩍들었다. 서너 반이 들어가서 앉을 수 있는 열람석이 있던 큰 규모의 학교 도서관도 폐가식으로 운영하던 터라 도서관에 가도 어떤 책을 신청해서 빌려 보아야 할 지 궁금하기만 했는데 도서반이 되면 어떤 책이 있는지 내 눈으로 보고 직접 고를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내용기는 그 후의 고등학교 시절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추억하게 한다.

 책은 사람을 위로하고치유한다. 도서관을 개방하는 점심시간이 되면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자 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서가의책을 정리하고 청소를 내고 나면 대출 반납 당번이 아닌 날은 가에 제대로 틀어박힐 수 있었다. 어떤 책이 있나 살펴보면서 소장 도서를 파악한 후 본격적인 책 읽기에 돌입했는데 각종 문학전집류를 1군부터 독파하는 것이 첫 목표였다. 어둑하고 좁은 서가 사이 앉아 「달과 6팬스」를 읽으며 남태평양의 티아레곷 향기를 맡기도 하고 『완전한 기쁨.다니엘라』를 읽으며 꿈을 잃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사가 되리라 다짐하다 보면 점심시간은 금방 지나버려 아쉬운 마음으로 교실로 돌아오곤 했다. 가족을 떠나고 친구 사귀기도 서툰 내가 홀로 시작한 도시 생활을 견디게 해준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리 학교 도서관은 아침8시 부터 아침 독서를 한다. 8시가 되기 전에 도서관 불을 밝히고 계절에 따라 냉방기와 난방기를 틀어놓고 아이들을 기다리면 거의 언제나 순서대로 들어오는 아이들. 그 아이들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맞추면서 읽은 책 이야기도 하고 책을 새로 권하기도 하는 아침 독서 시간을 기다린다. 일찍 도서관으로와서 혼자 책에 빠져 드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함으로써 그 아이들을 좀더 빨리 세상속으로 나오게 하고 싶다. 책에서 얻은 위안으로 꿈을 찾아 걸어온 지난  시절의 나처럼.

바라보기(qkfkqh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