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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을 듣고

김민기 씨는 우리나라의 음악을 획기적으로 변화 시킨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곡과 가사를 직접 쓰고 많은 곡을 양희은 씨등에게 주기도 하였습니다. 

정작 본인은 당시 정권에게 밉보여서 갖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운동권과 그 이후 세대에게도 대단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저는 최근 들어서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대단히 뭉클한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곡입니다.  특히 가사는 단순히 감상적인 것을 넘어서서 희망을 노래하려 노력하고 있어 더욱 눈물 겹습니다. 

전체적으로 슬픈 곡입니다만, 왜 김민기가 레전드가 되었는지 알수 있더군요. 

김민기는 정치적인 발언을 안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철저하게 음악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에 뜻이 있었음에도 주변 여건이 안되어 농사를 오래 짓기도 합니다. 양희은 등에게 곡을 많이 주었었고,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고, 김광석 등의 가수가 학전 소극장에서 공연을 자주 하도록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김민기를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뮤지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보고요, 지금이라도 그의 음악적인 부분을 더 비춰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합니다. 

김민기씨는 최근 jtbc에 나와서 자꾸 자신을 정형화 된 이미지로 만드는것이 힘들다고 토로 했죠.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하는데 70년대 운동권 음악 하는 사람으로 화석화 하는 것이 싫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김민기에 대한 약력 및 소개 - 위키백과 발췌

전라북도 이리시 출생으로, 전라북도 익산군 함열읍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 서울로 이사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재학 중 ‘도비두’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노래 활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 재동초등학교 동창인 양희은을 만나게 되면서 〈아침이슬〉을 주게 됐고, 1970년에 발표됐다.

1972년에는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우리 승리하리라〉, 〈해방가〉, 〈꽃 피우는 아이〉 등을 부르다 경찰서에 연행됐으며, 그의 앨범 및 노래는 모두 방송금지 조치됐다. 이후 김민기는 시인 김지하와 조우하게 됐고 야학활동을 벌여나가기도 했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를 노동자들과 함께 공연했던 그는 국악인들과 교유하여 다음해 〈아구>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77년 군 제대 이후 양희은의 〈거치른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을 발표했고, 동일방직 노조문제를 다룬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발표했다.

1980년에는 문화체육관에서 7년의 긴 공백을 깨고 공연을 펼쳤고 1983년에는 국립극장에서 탈춤과 판소리 등 소리굿 공연을 가졌다. 1987년에는 탄광촌 이야기를 담은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발표했고, 1990년대에 들어와 학전 소극장을 개관한 그는 1993년 22년 만에 독집앨범을 발표했고 '겨레의 노래'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뮤지컬 〈개똥이〉와 〈지하철 1호선〉 등 의욕적인 연출활동을 하였다.

그가 작곡하고 부른 노래는 힘들고 지친 빈민층을 사랑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곡들이 많다. 그의 곡 〈아침이슬〉은 1970년대의 저항가요였지만 1990년대까지 오면서 20여 년 동안 그 민주정신을 이어갔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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