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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반찬을 주는 줄 알았는데

 

 

나는 어렸을 때 입이 정말 짧았다. 먹는 것을 싫어했다. 씹는 것은 더더욱 싫어했다. 그래서 연명의 목적으로 우유를 참 오래 먹었다. 그 버릇이 남아, 성인이 되고 나서도 우유를 즐겨 먹었다. 그런 내 식이 습관 때문에 어머니가 많이 고생하셨다. 골고루 먹고 무럭무럭 자라야 하는 아이가 끼니 때마다 밥 안 먹겠다고 사투를 벌였으니. 사실 내 기억에도 옛 어머니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입속에 있는 밥을 빨리 씹어 삼키라고 나를 채근하던 어머니 모습. 속상해하시던 얼굴.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내 식이 습관은 점진적으로 개선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서는 살도 좀 붙었다. 그때부터는 먹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고, 먹는 즐거움도 알았다. 그래서 먹는 거 가지고 어머니 속을 썩인 적은 없었다. 원래 배통이 작아 뭔가를 많이 먹지 못해, 많이 먹는 걸로 탈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편식을 하긴 했지만, 걱정스러울 만큼 뭔가를 안 먹거나 덜 먹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평균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어머니 눈에 나는 여전히 밥투정하는 애 같은지, 아직도 어머니는 한 번씩 내 밥그릇 안에 반찬을 넣어 주신다. "어여 먹어라." 하신다. "많이 먹어야지." 하신다. 먹어서 키로 갈 것도 아닌데, 하고 내가 우스갯소리하면 어머니는 빙긋 웃으시며 "그래도 많이 먹어야지." 하신다.

 

그래서 한 번씩 재미있는 해프닝이 생긴다. 어머니가 반찬 집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가 "나 그거 안 먹어요." 하는 것이다. 그건 내 밥그릇에 넣어 줄 반찬이 아닌데, 어머니가 집는 반찬에 대고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습관이 무섭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어머니는 깔깔 웃으시며 "니 줄 거 아니다." 하신다. 그러면 나는 조금 민망해하고 많이 웃는다. 

 

지금은 내가 어머니 끼니를 챙겨 드리며 살아간다. 매일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되고 나서야, 어머니 마음을 조금쯤 헤아리게 된다. 모두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내리사랑을 이기는 치사랑이 있을까마는, 어머니께 받은 사랑 이렇게나마 하루하루 보답해 나가고 있다. 계속 민망해도 좋으니,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는 날들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소박한 듯하면서도 거대한 희망을 매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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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ogong(7paradiso) 2019-08-15 04:14:29

    눈물나려고 하네요.. 그러고 보면
    참 저는 나쁜 딸이고 못되먹은 며느리네요

    가끔 한 번씩 입맛에 맛는 음식 한 번 장만해드린 적이 없으니 말이지요
    저는 아직도 친정부모님, 시어른들께서 좋아하시는
    꼬리곰탕도 끓일줄 몰라서 홈쇼핑...

    좋은 상품을 찾아내서 다행히 어르신들께서 편하다고
    좋다고는 하시나... 직접 끓인 깊은 맛은 역시 아닌듯 해요

    추천, 후원드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좋은 글들요^^

    (●'   삭제

    • 난초나라(kjkyj) 2019-08-14 19:47:18

      어머니의 사랑으로 생긴 오해였군요.ㅎㅎㅎ 저라도 충분히 오해했을 거 같습니다. 박다빈님의 어린 시절의 추억 잘 보았네요.^^   삭제

      • 은빛태양을사랑할래(yulan21) 2019-08-14 11:43:17

        어머님이 입짧은 아드님때문에 속이 많이 상하셨겠어요.. 잘먹어야 쑥쑥크는데 .. 어른이 되서까지도 반찬놓아주시고 한다니 정말 정겨워보이네요.. 어머님 계속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   삭제

        • momo(kondora) 2019-08-14 10:11:30

          언제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들을 보면 가슴 한곳이 찡해 옵니다..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지금도 많이 그립죠..
          부모님들은 다른거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그걸로 충분하죠.. 어려선 부모님의 마음을 절대 알 수 없죠..
          본인이 부모가 되어봐야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죠..
          박다빈님! 어머님의 만수무강을 기원 합니다..   삭제

          • 바라보기(qkfkqhrl) 2019-08-13 20:55:08

            이해가 갑니다. 사람의 습관은 무섭다면 무서우리만큼 머리속에 집요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요. 어머님 모시고 사신다니 부럽습니다.   삭제

            • 메이블록(maybugs) 2019-08-13 13:36:06

              챙겨주기도 하고 챙김을 받기도 하는 관계와 또 그런 사람
              멋진 관계라 생각합니다. ^^ 숟가락 위에 깻잎을 올려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삭제

              • 상큼체리걸(hyedn85) 2019-08-13 10:24:41

                맞아요 어느순간 내가 부모님 건강을 챙기고 있게 되는.. 어느순간 자꾸만 아프다고 하는 부모님.. 언제까지나 큰 존재일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하면 맘이 참.. 오래토록 곁에 있어주시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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