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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황청심원과 호랑이

 

 

 

우황청심원과 호랑이

 

시험에 관한 에피소드에 웬 우황청심원과 호랑이냐고 하시겠지만 지금부터 그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일단 제가 좀 소심(?)하고 유리멘탈입니다. 조금 당황하거나 흥분하게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런 생각이 없어집니다. 가능하면 침착해 지려고 노력하는데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할 말은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고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이다가 급기야는 하얗게 변해버립니다.

 

예전에 자격시험을 하나 준비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몇 년을 준비한 끝에 1차 시험을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2차 시험도 3번째인데다가 나름 준비도 열심히 한 상태라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시험을 치기 위해 시험장이 있는 서울로 가기 전에 당시 저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요즘 말로 하면 썸을 타고 있는 정도로 보시면 되겠네요) 아가씨가 시험 잘 치고 오라며 이것저것 건네주었는데 그 안에 마시는 우황청심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밤에 잠이 안 오거나 많이 긴장되면 마시라면서 주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우황청심원을 먹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그 녀가 준 거니까 가지고만 있어도 진정이 되겠거니 생각하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시험을 치기 전날 서울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시험장 가까운 곳에 일찌감치 여관을 잡고 쉬고 있었습니다. 일찍 자려고 했는데 긴장 했던 탓인지 잠도 오질 않아 가져갔던 자료들을 보면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자꾸 말똥말똥 해 집니다. 제가 잠을 못자면 그 다음날 컨디션이 엉망이 되는 터라 이러다가는 내일 시험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준 꾸러미와 우황청심환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우황청심원이라는 걸 먹어 본적도 없었고 또 그 효능이나 맛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면접시험을 보기 전에 먹고 가는 걸 봐 왔던 터라 저는 박카스류의 강장 드링크 정도로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래서 그걸 마시면 진정이 되고 잠이 오지 않을까하여 주저 없이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셨는데 우황청심원이 목을 넘어가는 순간 ‘이건 아니다’ 라는 마음의 소리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우황청심환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맛과 냄새였습니다. 어떻게 표현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은 직접 한 번 경험해보시라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무튼 그 향과 맛이 계속 입과 코에서 맴도는 상태에서 몸과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두근두근을 넘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밤에 마시려고 사들고 갔던 큰 생수병의 물을 다 마셔봤지만 여전히 입과 코에서는 그 약 특유의 맛과 냄새가 가시질 않았고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어 자려고 누웠지만 잠은 오질 않고 정신은 또렷해져 가기만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는 걸 포기하고 가져갔던 자료들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있는데 시간이 새벽 네 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어느 듯 다섯 시를 넘어가고, 제 앞으로 큰 개(?)만한 새끼호랑이 세 마리가 제 앞으로 오더니 무등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집체만한 호랑이 한 마리가 어~흥이라는 포효와 함께 저와 새끼호랑이들을 덮쳐오는 것이 보이고 그 바람에 놀라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니 꿈이었습니다. 뭔가 특별(?)한 꿈을 꾸게 되면 다음 날 일이 일어납니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제법 잘 맞는 편입니다. 찝찝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시계를 보니 다섯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잘까하다가 꿈 탓인지 마음도 싱숭생숭해지고 잠도 올 것 같지는 않아 일어나서 가져갔던 자료들을 다시 훑어보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다가 일곱 시쯤 해서 씻고 시험장으로 갔습니다. 입실해서 시험을 기다리고 있는데 꿈이 계속해서 생각나고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가슴은 쿵쾅거리고 입에는 우황청심환의 잔향이 남아있었습니다.

2차 시험은 4과목에 한 과목당 3문제(50점짜리 1문제, 25점짜리 2문제) 각 100분씩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과락 40점에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입니다.

드디어 1교시 시험이 시작되고 시험지를 받아서 문제를 확인하는 순간 문제가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나름 준비도 했던 문제고 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답을 작성하려는 순간 25점짜리 한 문제에서 덜컥 합니다. 어제 여관에서도 시대상을 반영하는 문제라 주의 깊게 살펴보았던 문제인데 갑자기 준비했던 예비답안의 전반부가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이게 또 당황하게 되니 알고 있던 것도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허둥대고 있는 사이 아까운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이러다 다른 문제도 망치겠다 싶어 일단 다른 문제부터 먼저 답을 적었습니다.

두 문제를 먼저 풀고 다시 남겨두었던 문제의 답을 생각해 봐도 여전히 그 문제의 답만 하얗게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지라 아는 것 모르는 것 다 긁어모아 어찌어찌 답을 작성했지만 내 눈에도 영 차지를 않았습니다. 제발 과락만 면하게 해 달라고 빌면서 1교시 시험을 마쳤습니다. 1교시 시험을 마치고 휴식시간이 되었을 때 머리가 맑아지면서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2교시부터는 시험이 좀 수월했습니다. 시험시간 100분에 20페이지 답장을 주관식으로 메우는 것에 힘이 든다는 생각도 없이 수월하게 시험을 치렀고 다섯 시에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순간 진이 빠져 힘이 들었지만 1교시 시험이 과락만 면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기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꿈이 자꾸 생각이 나서 찜찜한 기분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발표가 나는 날 1교시 시험 과락만 면하게 해달라고 빌면서 확인을 해 보니 불합격이랍니다. 역시나 우려하던 데로 1교시 시험이 과락이 났습니다. 2점이 모자라더군요. 평균으로는 합격이었는데... 점수를 확인하는 순간 꿈에 나왔던 호랑이들이 생각이 나더군요...

우황청심원을 챙겨주었던 그녀는 합격자 발표가 나고는 연락이 뜸해지더니 어느 날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나가보니 이러이러한 남자가 있는데 결혼을 할까 생각중이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런 유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보지를 못 했고, 그 후 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얘기만 그 친구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시험도 훨~훨~

그녀도 훨~훨~

이제는 시간이 제법 흘러 담담하게 (아닌 것 같...괜히 울컥하는...)

오래 되었던 기억 한 자락을 꺼내봅니다.

이번에는 글이 제법 길었네요^^

아!..참!!! 약은 아무거나 함부로 줏어 먹지 말아야겠습니다....ㅎㅎ

 

 

 

 

#시험#우황청심원#호랑이#유리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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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짬e(alzzame) 2019-08-19 00:06:10

    슬픈 이야기네요. 안타깝네요.
    저도 입사 면접 볼 때 청심환을 먹고 갔었는데
    이것도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하더라구요.   삭제

    • 난초나라(kjkyj) 2019-08-17 11:28:14

      거북이님의 시험에 대한 포스팅 잘 봤씁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었네요.ㅎㅎ 멘탈이 약하시다는 점이 은근 의외였습니다.ㅋㅋ / 2첨 차이로 아쉽게 탈락해서 제가 다 안타깝네요.ㅠ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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