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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에 서서 느끼는 사랑<추천 도서>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지은이 위지안은 1979년에 태어났다. 환경 경제를 공부하기 위해 노르웨이에 유학 갔다가 이른바 ‘노르웨이 숲’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숲에 미래가 있다’는 비전을 세운 채 중국으로 돌아와 서른 살에 세계 100대 대학인 상하이 푸단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2009년 10월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5개월 동안 길지 않은 인생을 되돌아보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2011년 4월 19일 새벽 3시에 이 세상을 떠났다. 마흔 가운데를 넘어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서다.

‘그 어떤 고통도 모두 지나간다.’

이별? 지나간다. 마음의 상처? 지나간다. 실패? 다 지나간다. 설령 불치병이라도 모두 다 흘러가는 구름이다. (p. 16)

 

위지안, 그녀의 글은 암 투병 이야기나 건강 이야기가 아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한 젊은 여자가 깨달은 인생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순수한 영혼과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이른바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알려주는 삶의 지혜이자 삶의 지침이다.

아래에도 적었지만, 책에서 지은이가 말한 다음 글이 나에겐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수많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았다. 저당 잡혔던 그 무수한 ‘오늘’들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이해인 수녀는 “내가 허송세월하는 오늘은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내일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가 보내는 나날들이 소중하다는 얘기다. 만약 내게 삶이 하루, 일주일, 한 달 또는 1년이 남아 있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해준다.

 

<책 속으로>

옆에 있던 간호사가 끼어들었다.

“조금 아까 침대에 눕는 걸 보고 제가 경고를 했죠. ‘보호자가 환자 침대에 눕는 건 규정 위반’이라고요.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집사람이 유난히 추위를 타기 때문에 내 체온으로 미리 덥혀 놓아야 한다’고요.”

그 순간, 나는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혼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일들이 말 그대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렇게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내 자리에 누워 있던 남편. 그의 마음을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거의 매일, 그런 따뜻한 마음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장난이라고 단정해버리고는 짜증만 냈다니.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사소해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커다란 마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p. 25)

 

남들이 이야기할 때는 뻔하고 지겹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의 끝에 와서, 직접 부딪혀보고서야, 그 뻔한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진실인지 알게 되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보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라는 것을.” (p. 42)

 

스무 살 무렵의 나는, 늘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오류를 알지 못했다. 이제는 똑똑한 사람의 오류가 뭔지 안다. 그래서 착실하고 무던한 바보가 되기로 했다.

사실 ‘똑똑한 자’라는 낙인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남들이 관심 없어 하는 것마저 알아두어야만 하거나 아는 척해야 하고, 지적 허영으로 인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가책까지 짊어져야 한다. 심지어 자신을 더욱 채찍질함으로써 늘 피곤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운명은 내 맘대로 바꿀 수 없지만, 운명에 대한 나의 자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p. 48)

 

나는 내 꿈을 이루고 나면 사랑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 거라 여겼었다. 그러나 새싹이 자라 나무가 되기까지는 엄마 품 같은 햇빛이 늘 필요한 거였다. 내가 틀렸다.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p. 58)

 

믿음이란 오로지 순도 100퍼센트일 뿐이다. 조금 덜 믿거나 아주 조금만 의심해도 사라지는 게 믿음이기에 그저 ‘믿느냐, 안 믿느냐’뿐인 것이다.

“우리는 삶의 최후 순간까지 혼자 싸우는 게 아니었다. 고개만 돌려보아도 바로 옆에, 그리고 뒤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나와 사람들 사이에는 강고한 믿음이라는 끈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가 아닌 것이다. (p. 66-67)

 

“정성이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매일 지속되는 사소함에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빠가 불편한 다리로 산에 오르고, 그토록 싫어하던 기도를 한다는 것도 그랬지만, 그런 진심을끝내 내게 감추고 싶어 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세상엔 끝끝내 감추고만 싶은 진심도 있는 것이었다. 특히 남자들의 진심은. (p. 73)

 

“너무 꿈꾸지 마. 그렇게 기대를 크게 했다가 막상 결혼을 해보면 실망 아닌 절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둘이 만나 인생을 같이 걸어가려면 사랑이 너무 적어도, 넘쳐도 좋지 않은 거야. 사랑이 적으면 ‘함께’라는 의미가 무색해지고, 사랑이 넘치면 자아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지.”

“바람직한 사랑 혹은 결혼이란, 모든 중심을 상대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중심을 잃지 않게 서로 균형을 잡아주는 거야.” (p. 75)

 

개인의 가치와 공동의 사회적 가치가 합쳐진 삶이야말로 진정 ‘멋진 인생’이며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개인적 목적)와 이 지구라는 행성에 어떤 도움을 주기 위해 왔는지(사회적 목적)가 온전하게 결합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각성이 아닐까 싶다.

“자기 삶의 궤적이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바람직한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리라.” (p. 92)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창밖의 먼 길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면, 길이 끝나는 곳까지 쉬엄쉬엄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갈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고. 시간이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라고. (p. 105)

 

추억이란 게 왜 그렇게 소중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게 되면 누구나 아껴둔 식량처럼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 하나씩 음미하게 된다. 그런 음미를 통해 추억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삶의 또 다른 지혜를 얻는 것이다.

“나중에 더 많은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삶의 매 순간을 가득가득 채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든.” (p. 111)

 

어느 분야나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실력의 끝마무리는 언제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진정으로 열린 마음이 없는 한, 그저 ‘실력자’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최고’는 마음에서 다르다. 언제나 혼을 불어넣는 건, 상대를 위해주는 마음이니까. 결정적인 차이는 그 지점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p. 132)

 

돈? 명예? 권력? 그런 것들은 다 갖기도 어렵고, 설령 모두 가졌다 해도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동안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수많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았다. 저당 잡혔던 그 무수한 ‘오늘’들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p. 145)

 

엄마가 된 Y는 여전히 평범했지만,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나는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패배한 토끼가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늘 이를 악물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보다는, 좀 늦더라도 착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걷는 사람에게 지름길을 열어주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늘 부러웠던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수줍게 행복해하는 그녀를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등감과 질투라는 감정을 느꼈다.

Y는 자기다운 행복이 어떤 것인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착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착하다는 것. 남을 탓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공연히 미워하지 않으며, 남을 밟고 서기 위해 모진 마음을 먹지 않는 것. 그건 대단한 장점이었다. 그때는 너무 평범해 보여서 패배자의 특성처럼 보였지만. (p. 153)

 

“한 명의 은인이 나의 운명을 바꿔주는 것처럼, 한 권의 책도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은인을 만나는 것이 상당 부분 하늘의 도움인 데 비해, 책은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내 성취의 절반 이상은 내가 읽은 다양한 책들 덕분이었다. 왜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배은망덕하게. (p. 157)

 

생사의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시기를 가까스로 넘긴 뒤 돌연 삶이 가벼워졌다.

이제 더 이상 경쟁자도 적도 없으며, 누가 누구보다 강한지 따위에는 아예 관심도 없어졌다. 그 많던 프로젝트도, 스스로 만들어놓은 미션도 잠시 내려놓았다.

그렇게 세상에서 한발 물러나자 비로소 꽃과 구름과 바람이 보였다.

“하늘은 매일같이 이 아름다운 것들을 내게 주었지만, 정작 나는 그 축복을 못 받고 있었다. 선물을 받으려면 두 손을 펼쳐야 하는데 내 손은 늘 뭔가를 꽉 쥐고 있었으니.” (p. 162)

 

언젠가 아이가 자라나 ‘엄마에게 무엇을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메시지를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평생에 걸쳐 되새기며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는 메시지.

그 메시지는 입으로 전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적어도 엄마는 겁쟁이가 아니라고, 그러니 너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나는 비록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다. 설령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날 불쑥 죽음이 닥쳐온다 해도 그건 결코 내가 나약해서 포기한 것이 아니다.

“운명이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다 해도 결코 빼앗지 못할 단 한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선택의 권리’일 것이다.” (p. 234)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인 것 같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 (p. 278)

#오늘내가살아갈이유#사랑#위지안#죽음#남편#부부#추천도서#에세이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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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비솔99(rose3719) 2019-09-10 11:31:26

    삶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사랑이라고 하니 책을 보지 않았는데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죽음에 가까워질때 사람들은 많은 것을 느끼는것 같아요. 저도 이책을 읽으면서 추억을 되새겨 봐야겠네요   삭제

    • 메이블록(maybugs) 2019-09-10 10:39:01

      이 책을 읽어보라고 소개 받았는데 아직 읽지 못했는데요,
      이번달에 읽어야 겠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물리적으로 40-5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하지만 확실히 보장받지도 않았으면서 그냥 그렇게
      저렇게 사는것 같네요.   삭제

      • 박다빈(parkdabin) 2019-09-10 09:57:16

        이 책을 두 번 정독했는데 읽을 때마다 뭉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흔치 않은 이야기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참 많은 희망을 얻었네요.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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